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꿈은 이루어진다:  서울공대 교수가 되기까지


서 갑 양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개 요

 필자는 올해 2월부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항공 공학부에 부임하여 지난 반년동안 연구실 셋업과 강의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누구나 부러워할 서울공대 교수가 된 것에 대해 많은 축하와 적지 않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으나, 생각해보면 지난 10여 년 간의 배움과 연구의 시간이 그리 수월하지 않았음을 느끼며, 이 시간 잠시 돌아보는 여유를 갖고자 한다. 혹, 이 글을 읽게 될 장래 교수의 꿈을 가지고 있는 국내 대학원생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도움이 되는 글이 되기를 바라며, 또한 새내기가 된 심정으로 많은 선배 교수님들에게 내 자신을 짧게나마 소개하는 글이 되기를 소망한다.


꿈의 시작

 사람마다 교수가 되기로 마음먹는 것은 자의든 타의든 서로 다른 동기와 목적이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는 우연히 당시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의 충고를 듣고 난 후부터였다. 아마 그 때가 대학교 4학년 1학기 어느 시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계셨던 목사님은 그냥 지나치시듯 내가 교수가 되어 서울대 캠퍼스에서 훌륭한 일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격려해 주셨고, 그 말이 깊이 마음에 뿌리 내리게 되었다. 왜 그런 말 한마디가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지 신비롭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이런 심정이었던 것 같다. 나같이 지극히 평범한 학생도 얼마든지 서울대 교수가 될 수 있다는 그런 오기 혹은 작은 소망에 불을 지핀 것이라고나 할까…

 재미있는 것은 그때부터 필자의 목표는 오직 하나 교수, 더욱 구체적으로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유학을 가는 것도 아니고 동대학원에 진학하면서도 이러한 꿈에는 변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서울공대 대학원을 나와서 서울공대 교수가 되는 것은 거의 실현 가능성이 없는-물론, 불가능하지는 않지만-지나가는 아낙네가 듣고 웃고 지나칠 그런 무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현실적인 장벽이 필자에겐 더욱 열심히 하는 동기를 부여하였고 그때부터 마음속에는 ‘무조건 남들보다 2배 열심히 하자’라는 굳은 결심이 자리 잡게 되었다.


나의 스승과 연구의 첫걸음

 생각해보면 이런 결심을 갖는 것만으로는 꿈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늘 감사한 것이 내 자신을 가장 잘 훈련시켜 주실 수 있는 베스트의 스승을 만나게 된 것이다. 1992년 플로리다 대학에서 서울대로 부임하신 이홍희 선생님과 수업 시간에 몇 번 눈을 마주쳤다는 이유로(?) 대학원 진학 때 주저 없이 선생님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사실 그 당시만 해도 구체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시는지 또 그게 전망이 좋은지 어떤지 알 길은 없었다. 이홍희 선생님은 약간은 독특하게도 석사과정 때에는 저널을 탐독하여 기존 실험 결과나 이론을 뒷받침하거나 보완하는 이론적인 연구, 더 구체적으로는 모델링을 시키셨는데 나는 운이 좋았는지 석사 1년차 3개월 만에 응용 물리학 분야에서는 권위가 있는 Journal of Applied Physics에 논문을 투고하게 되었다. 이 논문이 그 해 8월에 출판이 승인되어 거의 서울대학교 기록에 가까울 정도로 빠른 시기에 첫 번째 논문을 내게 되었다. 이 논문이 물꼬를 튼 이유일까. 그 이후로 박사 2년차까지 이론적인 연구를 하여 10 여 편의 논문을 꽤 이름 있는 저널에 싣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쯤에 이르러 약간의 갈등이 생겼다. 즉 내가 이런 깊이가 부족한 이론적인 연구를 하여 과연 박사를 졸업할 수 있을까? 또한 설령 졸업한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교수가 될 수 있을까? 이런 고민 가운데 있을 때 이홍희 선생님이 하버드 대학교에 있는 George Whitesides 교수 연구실을 1999년에 방문하시고 난 후 그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던 soft lithography 쪽의 연구를 시작하도록 학생들을 독려하셨다. 그때까지 실험이라고 해봐야 고분자 필름을 스핀 코팅하여 표면 구조나 관찰하던 나에게 soft lithography라는 분야는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 특히 큰 장비나 비싼 재료 없이도 실험실 스케일에서 좋은 아이디어 하나만 가지고 승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국내 대학원에서의 성과

 그 당시 내가 조금씩 하던 연구는 고분자 불럭 공중합체(block copolymer)의 구조가 박막일 때 조성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 지를 이론적으로 보는 것이었는데 몇몇 연구자에 의해 confined system에서의 구조의 변화에 대한 연구가 하나 둘 발표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는 호기심에 의해 실험실에서 굴러다니던(?) 실리콘 패턴을 불럭 공중합체 박막 위에 올려 압력을 가한 다음 실리콘 패턴에 의해서 공중합체 구조가 어떻게 변할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온도를 올려 열처리 한 다음 냉각하고 실리콘 패턴을 떼어내려 하면 아무리 애를 써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손가락에 몇 번 상처를 입으면서까지 떼어내 보면 고분자 바닥에 뭔가 형상이 남아있는 것을 관찰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 온도를 올렸기 때문에 필름이 유동성을 갖고 실리콘 패턴의 빈 공간으로 올라간 것인데(소위 말하는 모세관 현상), 그 당시만 해도 현상을 파악하는데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결국 이것이 모세관 현상임을 알았고 그 다음은 위에 덮었던 몰드를 쉽게 떨어뜨리기 위해 PDMS라는 탄성체 몰드를 사용하게 되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이 결과를 모세관력 리소그라피(Capillary Force Lithography)라고 명명하고 재료/화학 쪽에서 탑 저널인 Advanced Materials에 투고하게 되었다. 이 논문을 시작으로 이론만 했던 내가 드디어 실험적인 논문을 다수 발표하게 되었고 이론을 한 덕분인지 실험적으로 관찰하는 재미난 현상들을 이론적으로 규명하여 또 많은 논문을 쓸 수 있었다. 이 과정이 너무나 드라마틱하여 몇 줄의 글로 설명하기 참으로 어렵지만 어쨌든 내가 두 번째로 도약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음은 틀림없다. 박사를 졸업하고 박사후 연구원으로 MIT에 가기까지 26편의 논문을 쓸 수 있었고 그 내용이야 한없이 부끄러운 것이 많지만 우연한 기회에 이 일이 7대 일간지에 소개되어 많은 분들의 축하 전화를 받게 되었다.


MIT에서의 박사후 과정

 내가 지원한 MIT 화공과의 Langer lab은 바이오 기술 쪽에서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소위 잘나가는 그룹이었고 대부분의 대학원생과 포스트 닥이 자기 펀드를 직접 가져오는 랩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랭거 교수가 나를 좋게 보았는지 전액 생활비를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했고 더욱 기막힌 것은 바이오 쪽 연구의 경험이 전혀 없는 나를 주저 없이 뽑아 준 것이었다. 아마도 그때까지 열심히 썼던 논문의 파워가 컸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당시 나는 무척이나 바이오 연구를 하고 싶었고 바이오를 하지 않으면 세계 추세에 뒤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박사후 과정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미국 생활이 전무했던 내가 집사람과 딸아이를 데리고 보스턴에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다. 차를 계약한 사람이 은행에 loan이 있어 거의 두 달 가까이를 1마일이 넘는 쇼핑몰까지 딸아이를 안고 걸어 다니며 쇼핑을 했다. 가까스로 차를 인수하고 미국 생활도 좀 익숙해 졌을 무렵에는 집사람이 둘 째 아이를 임신하였고 매일 늦게 퇴근하던 나는 매일 밤 딸아이와 임신한 아이로 인해 파김치가 되어 있는 집사람을 발견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조금씩 집사람이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다. 한편 실험실 생활도 만만치가 않았다. 바이오 배경이 전혀 없는 나로서는 매주 있는 팀 미팅에 들어가서 이해하지 못할 전문 용어와 쉽게 들리지 않는 영어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하였고, 뚜렷한 연구 주제를 찾지 못해 3개월가량을 헤매게 되었다. 하지만 두드리는 자에게 문은 열린다고 했던가. 내 차례가 돌아와 3개월 후 실험실에서 세미나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 Ali라는 대학원생이 내가 박사 때 했던 연구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 당시 그 학생은 단백질 및 세포를 표면에 패터닝하는 연구를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박사 때 했던 방법이 쉽게 적용될 수 있음을 알았고 그때부터 우리의 연구는 급물살을 탈 수 있었다. MIT 같은 유명대학에서 일 년에 10편이 넘는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는 쉽지 않으나 Ali와 내가 했던 연구는 꽤 성공적으로 여러 방면에 적용되어 Protein and cell patterning, Microfluidics, BioMEMS, Polysaccharides 쪽에서 10편 가까이 좋은 연구 논문을 낼 수 있었고 또한 내 개인적으로도 독일인 포닥인 Lahann과 했던 연구가 빛을 발하여 Applied Physics Letters와 Advanced Materials 등 주요 저널에 투고할 수 있었다. 3개월 동안 연구 주제를 찾지 못해 헤매던 내게 이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좋은 결과를 꾸준히 내었던 내가 기특했던지 랭거 교수는 항상 나를 격려하셨고 올해 초에는 MIT Technology Review에서 발행하는 TR100, 즉 세계에서 만 35세 미만의 젊은 과학자에게 주는 젊은 과학자상을 내가 받을 수 있도록 추천해 주셨다. 더욱이 나를 추천한 분야가 내가 박사 때 했던 nanotechnology 분야가 아니고 포닥 때 겨우 시작한 biotechnology and medicine 분야라는 점이 개인적으로 감격스러웠다. 더욱 고마운 것은 첫째 아이를 제왕절개해서 출산했던 집사람이 둘째 아들 찬영이를 건강하게 자연분만으로 낳았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이 모든 과정이 내기 믿는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였음을 이 지면을 빌어 고백하는 바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서울대학교 기계항공 공학부에서 나노/바이오 분야 교수 채용 공고가 났을 때 웬일인지 내가 그렇게 고대해왔던 꿈이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기대가 생겼다. 국내 대학원 출신으로 아직은 힘들지 않은가 라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떨칠 수 없었지만 면접 세미나를 하고 드디어 내가 후보로 추천되었음을 알았을 때 누구도 알지 못할 기쁨과 감격의 순간이 있었다. 비록 내가 졸업했던 화공과도 아닌 기계항공 분야였지만 이미 그동안의 드라마틱한 경험들을 통해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내 몫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드디어 올해 초 서울공대에 부임하여 그렇게 고대하던 꿈이 이루어지는 감격스러운 경험을 하였다.

 지난 일들이 가끔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갈 때가 있다. 교수가 되었다고 특별히 달라진 건 없지만 늘 내 자신을 채찍질하여 초심을 유지하고자 애쓰려 한다. 내겐 젊음이라는 무기가 있고 아직 어린 학생들, 그들과 같이 호흡하고 애로사항을 나누고자 한다. 교수가 된 것은 단지 새로운 시작임을 알기에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후배들과 동료 교수님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그리고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더욱 극적인 삶이 되도록 노력해 보려 한다. 아울러 이 글을 읽는 국내 대학원생들에게 내 경험이 아주 특별한 예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전례가 되도록 더욱 열심히 연구와 배움에 전진해 줄 것을 부탁하며 부족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개인적으로 내겐 새로운 꿈이 생겼다. 앞으로 이공계 위기라는 현실의 어려움을 딛고 다시 한 번 새로운 기적을 이루고자 도약하고자 한다. 위기란 위험과 기회를 함께 내포하는 말이기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58 서울대, 수능반올림 피해학생 구제 kbr0376 2004.07.03 3154
2057 21세기 경쟁력, 여성과학기술인 lee496 2004.07.03 4409
2056 이(理)의 위기가 공(工)의 위기 불렀다 lee496 2004.07.03 3732
2055 전기공학부 하나되는 나들이~취재기(3) [1] sweetpea 2004.07.03 5506
2054 나노 생물학의 연구개발 동향 lionheart 2004.07.05 4594
2053 (주)케이엠에스 장문석 사장 lee496 2004.07.05 4177
2052 환경공학, 깨끗한 미래를 약속한다 lee496 2004.07.05 3895
2051 이공계 위기와 과학 기초교육 lee496 2004.07.05 5136
2050 대학원 국내연구기반의 확립 lee496 2004.07.05 5208
2049 서울대 논술 시험에 대해 lee496 2004.07.05 4596
2048 이공계의 비전과 창조적 과학기술 전문인력 풀 lee496 2004.07.05 4907
2047 서울大 폐지논쟁 중단을 lee496 2004.07.05 5885
2046 상생경제 위해 이공계 살려라 kbr0376 2004.07.06 2905
2045 ‘나홀로 공부’ 열 학원 안 부러워요 kbr0376 2004.07.06 2783
2044 국립대 공동학위제 안 한다 kbr0376 2004.07.06 2870
2043 ─_─ㅋ 게시판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볼까 해요ㅋ [4] sweetpea 2004.07.06 5865
2042 고층건축기술(박홍근 교수님)--{1) sweetpea 2004.07.07 6182
2041 고층건축기술--(2) sweetpea 2004.07.07 7633
2040 고층건축기술--(3) sweetpea 2004.07.07 3413
2039 새내기 대학탐방기(8)--낭만?!─_─;;;즐;;;; [7] sweetpea 2004.07.07 5506
Login
College of Engineer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