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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대 이야기

한옥의 매력에 푹 빠진 건축학도

2017.04.05 11:24

lee496 조회 수:1575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의 사무실에는 여느 건축학과 사무실에 흔한 건축모형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 한 켠에 고풍스러운 한옥식 문과 한옥 기둥 모형이 놓여 있었다. 사무실 풍경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 교수는 수십 년간 한옥을 연구해온 건축가다. 많은 이들이 현대 건축을 선택할 때 한옥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전 교수는 “2000년 이상 유지해온 건축방식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며 한옥의 매력을 하나 둘 풀어놓기 시작했다.


현대 기술을 이용해 과거 한옥을 지켜내다
고풍스럽다는 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점 등 한옥의 장점을 꼽자면 끝도 없다. 하지만 건축가의 입장에서 한옥의 가장 큰 장점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하고, 건축 시간이 짧다는 점이다. 두 가지 장점 모두 한옥의 건축 방식과 관련이 있다. 서양은 아래서부터 벽돌을 붙여 쌓아 올리는 ‘조적식’인 반면,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권은 나무 부재를 끼워서 조립하는 ‘가구식’으로 건물을 짓는다. 가구식 건물이 안전한 이유는 부재 사이에 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진으로 인한 땅의 충격에너지가 결합 부위의 틈에서 열에너지로 방출되면서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조립식이니 건축 시간도 짧다. 실제로 전 교수는 2008년 수업 시간을 이용해 학생들과 한옥을 짓기도 했다. 30일 정도가 걸렸다. 나무를 깎아 부재를 만들고 손으로 일일이 조각해 홈을 만들고, 온돌을 설치하고 흙벽을 치기까지, 모든 과정을 수업에 참여한 15명의 학생들이 해냈다(163쪽 아래 사진).

이렇게 장점이 많은 한옥이지만, 물이나 불, 벌레에 약하다는 단점도 있다. 한동안 현대 건축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에 머물러 있었지만, 2000년경 다시 한옥의 인기가 높아졌다. 한옥이 재조명 받은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한옥을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우리나라에 건축사는 1만 명이 넘지만, 한옥 설계가 가능한 사람은 고작 60명 정도다. 대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전 교수는 한옥 자동화 설계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공간 정보만 설정하면 알아서 한옥을 설계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전국의 고급 한옥 160채를 다 조사했어요. 모든 부재들의 수치를 모두 잰 뒤, 부재들 간의 관계를 함수 식으로 만들었죠.” 그 덕분에 한옥을 설계하는 일이 훨씬 수월해졌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에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선정하는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꼽혔다.
 


3537개의 부재로 이뤄진 한옥조립모형
전 교수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쌓은 정보와 노하우를 이용해 한옥 모형 개발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완성한 한옥조립모형은 근정전을 100분의 1로 축소한 것으로, 실제 한옥처럼 작은 부품을 끼워가면서 조립한 가구식이다. 3537개의 부재로 구성된 한옥조립모형은 진짜 근정전을 그대로 복사한 듯한 모습이었다(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 이렇게 정교한 모형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적은 부재들로 근정전의 모습을 최대한 재현할 수 있도록 추상화하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어떤 부분을 단순화시킬지 오랫동안 고민했죠. 재료를 선택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나무, 아크릴, 하드보드지 등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 가구나 장판에 쓰는 MDF로 모형을 만들었다. MDF는 나무를 잘게 자른 톱밥과 접착제를 섞어 가공한 목재로 매우 단단하다. 이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가는 데 9년의 시간이 걸렸다. 아쉽게도 단가때문에 지금 당장 한옥조립모형을 상품화하진 못했다. 전 교수는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여러 면에서 완벽한 결과물을 시제품으로 출시하고 싶다”며 “많은 이들이 모형을 조립하면서 한옥의 건축 방식을 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유재
2008년 전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만든 한옥 ‘하유재(何有齋)’다.
허남진 철학과 교수가 붙인 이름으로 장자의 ‘무하유지향’에서 따왔다.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곳’이라는 뜻으로 세속에서 벗어난 자연 그대로의 공간을 의미한다.
서울대 공대 39동 앞에 있는 이 건물은 서울대 안에서 나무로 만든 유일한 한옥 건물이다.


 

글 : 최지원 과학동아 
사진 : 남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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