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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대 이야기

형상 기억 합금

2004.08.17 17:29

eunju96 조회 수:5648

자기 모습을 기억하는 합금

 

 아주 오랜 옛날 청동기 시대가 막을 연 이래로, 금속은 마치 공기나 물처럼 인간의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제 우리는 공기나 물이 없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속이 없는 생활 역시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 그 동안 금속이 담당했던 역할의 많은 부분을 플라스틱이 대신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금속은 우리 문명을 받치고 있는 대들보임에 틀림없다. 현대를 철기 시대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금속은, 천연 광석을 용광로에서 녹여 광석 속에 들어 있는 금속을 뽑아 내어 정제해서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런 자연적인 금속이 갖고 있는 성질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보다 나은 성질을 갖는 금속을 만들기 위해 개발된 것이 합금이다. 서로 다른 금속을 섞어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성질을 갖추도록 만든 것을 말한다.

 

 합금은 이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가 개발되어 여러 분야에서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그런데 합금 중에는 신기하게도 마치 지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어떤 모양을 그대로 기억할 줄 아는 것이 있다. 그런 합금을 형상 기억 합금이라고 한다.

 금속이 자기 모습을 기억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형상 기억 합금을 이용해서 어떤 온도 이상에서 형태를 잡아 놓으면, 구부리거나 뒤틀어서 아무리 다른 모양으로 바꾸어 놓아도 일정 온도이상으로 가열하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예를 들어 형상 기억 합금을 스프링 모양으로 감은 다음 다시 길게 펴 놓아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 온도를 가하면 다시 원래의 스프링 모양으로 되돌아 간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마술을 보는 기분일 것이다.

 

 형상 기억 합금을 처음 실용화한 것은 1969년 NASA가 달에 안테나를 설치한 때라고 알려져 있다. 문제는 달에 설치할 안테나가 접시 모양의 거대한 파라볼라 안테나였다는 점이었다. 그처럼 커다란 안테나를 작은 우주선에 실어 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무게보다는 펼쳐 놓은 안테나의 크기가 더 골치 아픈 문제였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형상 기억 합금을 이용하여 약 150도의 온도에서 안테나를 만든 다음 고기잡이 그물을 접듯이 척척 접어서 달에 싣고 가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우주 비행사들은 접혀진 안테나를 싣고 가 달 위에 접힌 모양 그대로 안테나를 설치해 놓았다.

 그런데 달 표면은 태양빛을 받으면 약 200도까지 온도가 상승한다. 온도가 올라가자 접혀 있던 형상 기억 합금 안테나는 순식간에 원래의 접시 모양으로 돌아가서 멋지게 안테나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달 위에 설치한 안테나의 재료는 니켈과 티타늄을 거의 반씩 합금한 것이었다.

 

우연히 발견된 니타놀

 

 금속이 형상을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미 1950년대에 미국 일리노이 대학에서는 금과 카드뮴의 합금에서 형상을 기억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이 발견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형상 기억 합금에 관심이 집중되기 시작한 것은 1963년 미 해군 연구소에서 니켈과 티타늄의 합금이 형상을 기억하는 성질을 갖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 후의 일이다. 니켈-티타늄 합금을 산업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 합금을 발견하게 된 과정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미 해군 연구소에서는 잠수함이나 상륙정을 만드는 구조재로 사용하기 위해 바닷물에도 녹이 슬지 않으며 무게도 가볍고 견고한 합금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이상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한 젊은 연구원이 티타늄과 니켈의 배합비를 여러 가지로 변화시켜 만든 합금을 구부려 보았다. 시험을 마친 연구원은 실험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구부러진 합금을 들고 상관에게 보고를 하러 갔다. 이상한 일은 그 때 일어났다. 분명 구부러져 있어야 할 합금이 판판하게 펴져 있는 것이었다.

 놀란 연구원은 합금이 펴진 원인이 무엇인지 조사해 보았다. 조사 결과 뜻밖에도 상관이 물고 있던 담배 파이프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담배 파이프의 더운 열이 합금을 데워서 원래의 평평한 상태로 돌아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개발되기 시작한 니켈과 티타늄의 합금에는 니켈과 티타늄, 그리고 해군 연구소 이름의 머리글자를 따서 니티놀 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니티놀이 발견된 이래 형상 기억 효과를 나타내는 합금이 수십 가지나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실용성이 높은 것은 니티놀 이외에 구리와 아연, 그리고 알루미늄을 합금한 것 정도이다.

 니티놀은 내구성이 좋고 원래의 형상으로 돌아가는 힘도 강해서 가장 촉망받는 형상 기억 합금이다. 더구나 니티놀의 특허는 이미 유효 기간이 지나 버려 누구든지 마음대로 만들 수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니티놀도 문제점을 하나 안고 있다. 값비싼 티타늄이 50% 이상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점이다.

 니티놀에 비해 구리 계통의 합금은 가격이 휠씬 싸지만 반복해서 사용하면 형상을 기억하는 성질이 떨어진다는 결점이 있다. 따라서 구리 계통의 형상 기억 합금은 여러 번 반복해서 사용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번만 형상을 기억했다가 다시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분야에서는 휠씬 싼 값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형상 기억 합금의 비밀

 

 이제 여러분은 모두 같은 물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형상 기억 합금은 어떻게 이런 기묘한 성질을 갖게 된 것일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합금 안에 마르텐사이트라는 조직이 형성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담금질이라는 방법이 쓰였다. 옛날 대장간에서는 낫이나 칼 같은 연장을 만든 다음 마지막으로 뜨거운 불에 벌겋게 쇠를 달군 후 재빨리 찬물에 담갔다 꺼냈다. 이것이 바로 담금질이다. 담금질을 거친 쇠는 그렇지 않은 쇠보다 휠씬 강해졌다. 이렇게 담금질을 했을 때 쇠가 강해지는 이유는 마르텐사이트라는 조직이 쇠 안에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똑 같은 일이 형상 기억 합금에도 일어나서 형상을 기억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철도 형상을 기억할 수 있는 소질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철에 생긴 마르텐사이트 조직은 단단해서 변형하기가 쉽지 않고 낮은 온도에서는 마르텐사이트 조직이 생기기 어렵다. 따라서 철은 형상 기억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

 형상 기억 합금은 현재 여러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특히 F14 전투기에서는 파이프 이음쇠를 만들 때 이 형상 기억 합금을 이용해서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한다. F14 전투기의 이음쇠에는 니티놀이 이용되고 있다. 전에는 이음쇠로 알루미늄 합금을 사용했는데, 알루미늄 합금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용접 부위가 약해져서 다시 교체해야만 했다. 하지만 니티놀 형상 기억 합금을 사용한 후에는 이런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여기서 잠깐 그 원리를 알아보기로 하자.

 니티놀은 니켈과 티타늄의 배합비를 바꾸면 형상 기억을 위한 변형 온도를 영하 50도에서 영상 100도에 이르는 넓은 범위에서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 F14 전투기의 이음쇠는 변형 온도가 영하 20도인 니티놀로 만드는데, 우선 이음쇠의 안지름을 그것과 연결되는 파이프의 바깥 지금보다 약간 작게 만든다. 다음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이음쇠를 영하 196도의 액체 질소 안에 넣어 충분히 냉각시킨다. 그리고는 이음쇠의 안지름을 파이프의 바깥 지금보다 조금 크게 늘이는 것이다.

 이렇게 안지름을 늘인 이음쇠를 냉각한 상태 그대로 보관해 두었다가 배관할 때 공기 중에 들어 있는 수분이 얼음이 되어 붙지 않도록 신속히 파이프에 연결한다. 그러면 이음쇠는 실온 속에서 원래의 형상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시 말해서 파이프의 바깥 지름보다 작은 안지름을 가진 이음쇠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음쇠가 전투기에 사용된 후에는 기름이 유출되는 등의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얼마나 단단하게 밀착되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속옷에까지 이용되는 금속

 

 형상 기억 합금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또 어디가 있을까? 여러분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라. 만일 자동차를 형상 기억 합금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형상 기억 합금 자동차라면 사고가 나서 우그러져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간단하게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은 아직 형상 기억 합금의 값이 은보다도 비싸다는 것이다. 그래서 뜨거운 물만 부으면 우그러진 곳이 펴져 새 차가 되는 자동차를 아직 만들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형상 기억 합금이 갖는 성질로는 초탄성도 들 수 있다. 일반 금속은 힘을 주어 한 번 모양이 변하면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형상 기억 합금을 초탄성 처리하면 금속이 고무처럼 주욱 늘어났다가 힘을 빼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이런 초탄성을 이용한 제품도 많다. 치과에서 치아 교정 재료로 사용한다든가 뼈가 부러졌을 때 부목으로 사용하는 등 의료 용구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속옷을 비롯한 가전 제품에도 응용되고 있으며, 로봇을 만들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형상 기억 합금은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가격이 좀더 싸지면 형상 기억 합금은 많은 곳에서 그 요술의 진가를 독특히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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