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도시설계공학 연구실

2006.02.13 08:35

조회 수:9171


 도시설계공학

명품 도시를 설계하는 휴먼테크놀로지


| 글 | 박소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ㆍsohyunp@snu.ac.kr |


 

인류 최고의 문화 유산인 도시. 그러나 무조건적인 성장으로 대표되던 산업혁명은 도시를 획일화했다. 사진은 서울 도심에 빽빽히 들어선 건물 숲.



도시설계란 꽤 혼란스러울 수 있는 용어다.

공과대학에 독립된 학과 또는 학부 형태로 개설돼 있어 비교적 낯익은 건축학이나 도시공학과 비교해보면 도시설계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을 때가 많다. 특히 건축이나 도시계획은 오랜 전통을 유지해 온 학문인 반면 이보다 전문 분야인 도시설계는 최근 40여년 사이에 급부상한 분야다.


물론 인류가 도시를 건설해 생활하기 시작한 초창기부터 긴 도시의 역사 속에는 굳이 도시설계라는 이름표를 따로 달지 않더라도 그 개념이 담겨 있었다. 오늘날 동서양의 유명한 도로나 광장, 동네, 장터, 공원 등 아름답고 쾌적한 도시 공간들은 모두 바람직한 도시설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도시 미화 작업은 권력을 상징하는 성이나 시청사, 박물관, 종교시설과 같은 기념비적 건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중반에 와서 좀 더 광범위하고 복합적인 방식으로 도시 환경을 개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현대적 의미의 도시설계가 확립됐다.



도시인 삶을 계획하는 디자인


기원전 4000~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도시가 처음 형성되기 시작한 이래 도시문명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인류문명의 상징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고대도시들은 큰 강 주변의 비옥한 땅을 통치하기 위해 성곽을 쌓고 그 안에 기념비적인 궁과 사원, 주택들이 들어서는 등 거의 유사한 구조를 띠었다. 그 뒤로 산업혁명 이전인 그리스-로마시대, 중세, 근세의 도시들은 각각 당대 전통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 흔적이 남아있는 동서양의 전통도시들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겪으며 급격하게 변한 도시환경은 인류가 그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많은 도시문제를 가져왔다. 도시인구의 급격한 팽창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도시의 하부구조는 주거환경의 악화와 함께 화재, 전염병 같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특히 공공시설과 공공 서비스의 부족은 심각한 도시문제로 떠올랐다. 결국 전문적인 해결방안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당면 문제에 대응하면서 도시의 물리적 사회적 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도시설계도 바로 여기서 태동했다.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도시설계의 현대적 의미는 ‘건축과 도시계획 사이의 간격을 채우는 분야’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다.


내용을 좀 더 쉽게 풀어, 토지를 2차원 평면으로 나눠 각 토지의 기능과 특성을 규정하고 경제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분야가 도시계획이라면 건축은 이렇게 구분된 땅 위에 건물을 설계해 만드는 분야다. 문제는 지금까지 두 분야는 서로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해왔으며 그 결과 도시민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 즉 도시의 공공적 기능의 수준과 질이 떨어졌다는데 있다.

 

 도시의 미학은 현대인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키워드다. 생태하천으로 다시 태어난 양재천은 비교적 성공적인 도시설계 사례로 꼽힌다.



 이 같은 ‘공공영역’의 수준저하는 도시문제의 심각한 요인으로 떠올랐다. 여기서 공공영역이란 사람이 거주하는 집과 사무실 같은 건물 밖에 존재하는 공간을 뜻한다. 집과 집 사이,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시민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보행자 도로, 공원 등은 모두 공공영역에 속한다.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것 같지만 하루 동안의 생활패턴만 살펴봐도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직장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야 하고 가게에서 간단한 물건 하나 사려고 해도 집 밖으로 나와야 한다. 아침운동을 하기 위해서도 집 근처 공원에 가야 하며 이웃과 마주치며 우리 동네라고 말 할 수 있는 곳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안이라기보다는 골목이나 공터다.


그러나 이런 외부공간은 도시계획을 잘한다거나 멋진 건물을 짓는다고 결코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급격한 도시 팽창 과정에서 이런 공공영역은 오히려 더 황폐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피폐해진 도시의 공공영역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도시계획과 건축을 모태로 태어난 도시설계는 ‘도시 공공영역을 디자인하는 분야’라고 볼 수 있다.


이들 공공영역의 범위는 도로 주변에 설치한 화분박스처럼 아주 작은 부분에서 도심의 광장이나 신도시 공동체 기반시설과 같은 대규모 시설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다. 도시 디자인이라는 성격이 강한 만큼 설계상에서도 기능, 구조, 그리고 아름다움이라는 디자인의 기본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최근 들어 ‘도시의 미(美)’라는 개념이 더욱 강조되면서 ‘참살이(웰빙)’ ‘친환경’ ‘지속가능한 발전’ 등 새로운 가치관에 기초한 요구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대대손손 물려줄 도시 문명이 화두


그렇다면 최근 들어 도시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더욱 강하게 일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삶의 질 문제와 관계가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도시 환경은 대다수 인류의 삶에 직결된 문제다.

 

세계 건축의 실험장 프랑스 파리. 도시설계는 다음 세대의 삶과 문명 발전의 실험장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도시 환경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들은 오히려 더 늘고 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척박한 도시를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자는 요구는 더욱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도시환경이 황폐해진 주요 이유로 자원의 무분별한 소비를 바탕으로 하는 도시 구조와 형태, 생활 패턴이 지적되고 있는 만큼 도시설계 분야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실정이다.


이에 관한 한 가지 사례가 있다. 화석연료의 무한 공급과 사용을 전제로 원활한 교통순환에 궁극적 목표를 두고 있는 자동차 중심의 도시 환경은 삶의 질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사회적 인식전환에 힘입어 보행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몇몇 지역에서 실시되고 있는 ‘걷고 싶은 거리조성’과 ‘한 평 공원’프로젝트는 도시설계의 작은 사례로 꼽힌다. ‘걷고 싶은 거리조성’사업은 과거 자동차 중심으로 개발된 기능주의적인 도시를 반성하고 건강하고 쾌적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보행자를 장려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한 평 공원’ 역시 도시 구석구석에서 발견되는 자투리땅에 풀과 나무를 심어 시민의 쉼터로 만들려는 노력이다. 이들 외에도 자전거길과 풀길(녹로), 바람길, 생태지형 등 새로운 패러다임을 따르는 표준과 지침들이 도시설계에 활발히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노력은 모두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큰 명제에 따라 크고 작게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들이다. 현대에 들어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우리의 도시환경 개선에 있어 가장 시급히 도입해야할 과제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환경에서 다음 세대, 또 그 다음 세대가 계속해서 잘 살아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노력, 이것이 이 개념의 요지다. 이런 노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인간과 환경, 생존문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첨단 기술에 힘입어 해저도시, 우주기지, 가상도시, 유비쿼터스 도시를 기획하는 것이 기존 공학에서 내걸 수 있는 미래 도시 환경에 대한 비전이라면, 현재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길, 마을, 단지, 도시를 새롭게 다시 만들고 가꾸는 일에 주목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은 도시설계자들에겐 피할 수 없는 화두인 셈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과거의 무분별한 개발로 도시인의 삶에서 사라진 건강, 자연, 이웃, 참살이 같은 가치들에 주목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도시를 개발하자는 것이다.



도시, 무한발전에서 현명한 성장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방면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공공 투자로 중심 지역을 개발해 도시의 공공 서비스 수준을 높이고, 민간 개발업자들이 ‘공익’에 부합하는 사업을 벌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서민층이 빈부에 상관없이 일정수준 이상의 주거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주거 형태를 늘리는 한편 도시 공동체 기능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 또 도심의 자연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토지를 좀 더 적게 쓰는 건물 디자인과 배치기법도 연구돼야 한다. 또 자동차 사용을 억제할 수 있도록 도로와 도시구조를 설계하고 교통 체증을 막기 위해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와 시설을 마련해야 한다.

 

대표적인 도심 재개발 사례로 꼽히는 청계천 복원 사업은 전세계 도시설계자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서울시와 미국 하버드대 건축공학과가 공동으로 진행한 청계천 스튜디오 프로젝트에 출품된 청계천 인근 조감도.


 최근 들어 세계 유수의 도시들은 도시건축의 궁극적 가치를 더 이상 무한적 성장과 발전이 아닌 ‘현명한 성장’(Smart Growth)과 ‘지속 가능한 발전’에서 찾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대로 이들 개념은 도시 공공 디자인의 핵심 개념이다. 최근 주목 받고 있는 미국 보스턴 ‘빅 딕’(Big Dig) 프로젝트와 서울의 청계천복원사업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들 두 프로젝트의 유사점은 모두 과거 특정한 도시 설계 가치를 반영해 지은 시설을 부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설계의 개념을 실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사업은 철근과 콘크리트를 모두 철거하고 풀길과 물길을 다시 열어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은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보스턴 도심을 관통하던 6차선 고가 하이웨이와 서울 청계고가는 1950~1970년대 미국과 한국의 발전지상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시설계사업의 결과물이었다.


1959년 개통한 보스턴의 ‘센트럴아트리’는 시내 도심부를 통과하는 고가도로였다. 도로를 지을 당시만 해도 교통을 원활히 하고 도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목표였지만, 급격히 늘어난 교통량을 소화하지 못하고 도로로 고립된 인근 지역이 황폐해지면서 시 당국은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1950~1960년대에 지어진 고가도로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센트럴아트리 역시 인근에 살고 있던 주민을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마을 공동체를 파괴했다.

 

‘훤히 뚤린 물길을 보며 풀길을 즈려밟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풀꽃이 만발한 청계천변을 시민들이 거닐고 있다.


‘빅 딕’은 바로 이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제시됐다. 기존 6차선 고가도로를 철거해 주변 지역을 녹지를 포함하는 공공영역으로 복원하는 한편 그 지하에 8차선 지하고속도로를 짓는다는 야심찬 시나리오였다. 복원 작업에는 이 지역을 살기 좋은 도심마을 공동체로 재활시키는 것도 포함됐다.


이 사업은 기술적으로 쉽지 않고, 환경적으로 도전이 되는 도시하부구조 재건에 관한 획기적 프로젝트로 평가 받는다. 2005년 12월 현재 98%의 공정을 마친 상태다. 약 32만평의 공공용지가 확보됐으며 5만평 규모의 공원도 추가로 도심 주변에 조성될 예정이다.


하지만 최근 가장 성공적인 도시설계사업으로 꼽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청계천 복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에 통수식을 열고 서울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청계천 역시 비슷한 배경을 갖는다. 1970년대에 지어 한때 나라 발전의 상징물로 인식되던 청계고가도로는 시간이 흐르면서 급격히 낡아 안전에 문제가 있었으며 어두운 그림자를 도심 한 복판에 드리워 주변 환경 악화의 주범으로 여겨질 정도로 의미가 퇴색하고 있었다. 또한 주변 상가 대부분이 낙후해 무언가 새로운 조치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결국 서울시의 주도 아래 낡은 구조물을 철거하고 원래 그 아래 흐르던 청계천 물을 다시 흘려보내는 사업이 시작됐다. 2년이 지나 청계로와 삼일로 전체가 철거되고 태평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동대문까지 물길이 다시 이어지고 그 주변에 산책로와 휴식공간이 들어섰다.


청계천 복원의 의의는 단순히 도심 속의 흉물을 철거했다는데 그치지 않는다. 도심 중간에 물을 흘려 침체된 도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에 더 큰 점수를 줄 수 있다.


청계천 외에도 우리에게 도시를 더욱 친숙한 공간으로 다가서게 하는 프로젝트들은 여럿 있다. 전통 문화 공간인 인사동과 북촌 역사마을, 그리고 남대문 광장, 젊은 문화의 분출지대인 홍대 앞과 대학로 걷고 싶은 거리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공간이 모든 도시와 마을로 확산될 때 우리의 전반적인 생활환경의 질이 높아지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될 것이다.



인문학과 공학, 그리고 예술적 모티브

 

사람, 건물, 길, 물, 숲 등은 복잡한 도시라는 문장을 구성하는 형태소다. 서울 도심의 야경을 배경삼아 불꽃놀이용 막대로 ‘2006`’을 썼다.


이처럼 도시설계공학은 인간과 문화, 공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이다. 도시설계학은 현재 우리의 도시환경이 직면해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의 해결과 삶의 질 향상, 친환경성 회복, 도시환경의 국제경쟁력 강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시설계자들에 대한 교육은 학제간 협동으로 이뤄진다. 건축학과 도시공학이 모태인 만큼 학부과정에서 이들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하고 대학원에서 도시설계 전문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


유럽과 미국의 경쟁력 있는 몇몇 도시설계프로그램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에서 유일하게 도시설계를 학제간 협동과정으로 대학원에 개설해놓고 있다. 현재 공과대학 건축학과 및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농업생명과학대학 조경학과 그리고 환경대학원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전공자들은 도시설계 실습과 세미나뿐만 아니라 토지이용과 교통계획, 도시 인프라, 도시개발, 도시경제, 장소마케팅, 공공 재정기법, 지리정보 등 도시와 관련된 모든 학문을 접하게 된다. 이밖에도 도시 재개발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연구하고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을 개발하는 한편 도시 변화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해나가는 것도 도시설계학의 영역이다.


세계의 아름다운 도시는 모두 도시 전체가 조화롭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도시 설계가 총체적으로 잘 이뤄졌다는 뜻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유럽의 광장과 길, 미국과 유럽 대도시에 잘 조성된 공원과 호수, 일본 전통마을조차 우리가 선호하는 도시의 미래상을 담고 있다. 여기엔 물론 성공적인 도시설계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도시설계는 인간을 위해 더 나은 장소를 만들어 가는 노력의 과정이다. 먼 후손의 삶까지 고려한 도심 가꾸기는 비단 도시설계 전문가들의 몫만은 아니다. 도심 공간을 가꾸어 가는 일은 도시에서 일상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집단과 개인이 도시설계 과정에 참여해 각자 바람을 표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도 앞으로 도시설계 전문가들이 해결해야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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