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여성의 눈으로 본 과학기술

윤정로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학부 교수, 과학기술사회학)

 

I. 머리말

아직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과학기술 분야 참여는 매우 저조하다. 그러나 최근 사회 전반에 걸친 여성 참여 확대 분위기 속에서 특히 새로운 지식기반사회의 핵심적인 부문이자 새로운 성장 동력의 원천으로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여성 참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정부 차원의 여러 가지 제도와 정책이 마련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여성의 과학기술계 진출을 촉진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프로그램과 대책을 강구함과 동시에 보다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비전을 세워나가야 한다. 여성이 무엇을 위해서 과학기술계에 진출하고, 여성이 과학기술에 참여했을 때 어떻게 생산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며 기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논의의 출발점으로, 필자는 과학기술의 생산과 활용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여성의 눈’으로 과학기술에 대하여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minority)였던 여성의 눈을 통하여, 여러 사회적 약자 집단들의 관심과 권익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영역을 확대하고 새로운 발전 방향을 개척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사회 발전과 평화에 이바지하는 과학기술의 이념을 구현하는 길이다.    

II. 우리는 어느 지점에 있는가?

2002년 10월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여성과학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과학기술부 주관으로 금년 정기국회에 법안을 상정하기 위해서 거치는 마지막 공식 절차였다. 이 법안은 최근 우리 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여성 인력 활용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동안 과학기술 속의 여성 문제에 대한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온 여성 과학기술인들과 여성의 권익 신장과 참여를 위해 노력해온 여성운동 전반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이번에 상정된 법률안의 주요 내용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기본계획의 수립 및 추진이다. 과학기술부 장관은 5년마다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계획을 종합하여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기본계획을 세우고, 이를 중장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둘째, 여성의 이공계 진학 및 전공 분야의 다양화 촉진 방안이다. 정부는 여학생들이 이공계의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서, 전공하는 여학생 수가 크게 부진한 분야에 대해서는 적정한 수준의 여학생 입학 비율을 유지하도록 권장하고 여학생의 비율을 적정하게 유지하는 대학에 우대 시책을 추진한다.

셋째,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의 시행이다. 우수한 여성 과학기술인의 진출이 부진한 분야에 대해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잠정적으로 채용목표 비율 및 직급별 승진목표 비율 등을 설정할 수 있다.

넷째, 여성과학기술담당관의 지정이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는 연구기관 등 여성과학기술인의 채용 비율이 높은 공공기관은 여성 과학기술인의 채용 촉진 및 지위 행상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서 소속 직원 중에서 여성과학기술담당관을 지정해야 한다.

다섯째, 여성 과학기술인의 효율적 육성과 지원을 위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여성 과학기술인 지원센터 설치이다.

이렇게 여성의 과학기술계 진출을 촉진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는 현재 우리는 어떤 지점에 서 있는가? 서양의 과학철학자인 샌드라 하딩(Sandra Harding)은 역사적으로 과학이 군대 다음으로 가장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여성을 배제했던 사회 활동의 영역이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기술 분야의 여성 배제와 과소 대표(under-representation) 현상은 대단히 심각하고, 최근까지도 과학기술과 여성의 문제는 지적(知的), 사회적 관심의 사각지대로 남아있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전문 여성 과학기술인의 진출은 압도적으로 연구직과 교직에 집중되어 있다. 1990년대까지도 과학기술계의 여성 진출 현황을 통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관련 통계 자료는 인력의 성별 구분에 비중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의 과학기술계 진출이 매우 저조하였음을 반증한다.

1971년 조사된 바에 의하면, 당시 자연과학 분야의 여성 교수는 18명(4.9%)이고, 공학 분야는 전무하였다. 1981년에는 자연과학 분야의 교수 중 여성이 5.3%였다. 1988년 어느 외국의 학자가 6개국의 대학과 정부 기관에 근무하는 여성과학자를 비교한 논문에서, 우리나라는 표본의 수가 너무 적어 정확한 분석이 어렵다고 기술하고 있다.     

1995년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 인력 128,315명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0%(10,235명)였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이보다 열악하다. 본격적으로 연구활동을 수행하는 정부출연연구소의 경우 연구원의 5.1%만이 여성이며, 기업연구소에서는 4.9%에 불과하다. 대학에서는 연구원의 12.6%가 여성인 것으로 보고되어 있으나, 여기에는 대학원생과 대학원 과정을 졸업하고 취업하지 못하여 명목상 연구원으로 등록되어 있는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1995년 4년제 대학 교수 중 여성의 비율은 자연과학 분야가 5.7%, 공학 분야 0.6%로, 자연과학과 공학 분야를 통틀어 2.5%에 불과하다. 현장 실무 경험을 중시하는 기술사의 경우에는 여성이 더욱 희귀하여 0.3% 밖에 안 된다. 여성이 비교적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중고교 교사의 경우에도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는 여교사의 비율이 낮고, 중학교보다 고등학교에서, 학년이 높아질수록 그 비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일례로 전국 16개 과학고등학교에서 수학이나 과학 과목에는 여교사가 전무하였다. 또한 과학기술분야의 여성 인력은 대학교수(14%), 언론인(15%), 의사(15%) 등 다른 전문직종에 비해서도 그 비율이 상대적으로 저조하였다.

2001년에는 과학기술 연구개발 인력 중 여성의 비율은 11.1%, 정부출연연구소의 연구원 중 여성은 7.5%, 대학교수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여성 교수의 비율이 12.2%, 공학 분야는 1.9%를 차지하고 있다. 1995년과 비교하여 여성 과학기술 인력의 진출이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그 규모는 미미하고 다른 나라는 물론 국내의 다른 부문에 비해서도 저조하다. 또한 취업 기회의 제한, 전공 분야의 편중, 하급직 및 임시직 집중 등 전통적으로 여성의 과학기술계 진출에 있어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점들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 속의 여성문제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고조되면서 새로운 움직임들이 일어나고 있다.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한국여성정보인협회,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등 여성 과학기술인 단체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화학, 물리학, 화학공학 등의 학회에서도 여성 분과가  결성되고 있다. 정부 측에서는 1999년부터 실시한 교육부의 Brain Korea 21 사업에 ‘여성 전문연구인력 양성’이 6개 특화 분야의 하나로 포함되고, 2000년부터 한국과학재단에서는 여성 과학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여성발전기본법(1996년), 여성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2001년), 여성어업인 육성법(2002년) 등 여성의 참여를 지원하기 위한 일련의 법률이 제정되는 추세 속에서,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제정은 정부와 여성과학기술인 및 사회 각계의 노력을 결집하여 체계화함으로써 여성 과학기술인의 진출을 뒷받침하는 고무적인 조치이다. 이러한 법적, 제도적 장치의 마련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더 뿌리깊은 사회적 의식과 분위기, 관행의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III. 우리는 어떤 입장에서 과학기술을 볼 것인가? 

필자는 몇 년 전 여성 과학기술 인력의 활용 촉진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 이유를 3가지로 정리한 적이 있다. 첫째는 새로운 지식기반경제에서 국가경쟁력의 핵심이 되는 고급 과학기술 인력의 충원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이다. 선진산업국들은 이미 과학기술 혁신역량 제고와 고급 과학기술 인력 확보에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여성을 고급 과학기술 인력의 양성에 있어 막대한 계발 잠재력을 가진 집단으로 파악하고 정부와 범사회적 차원에서 적극적인 시책을 시행하고 있다. 여성 참여가 대폭 확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들어 더욱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여성 과학기술 인력 육성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가 매우 시사적이다.

둘째,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성별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서이다. 현재 우리나라 여성의 사회참여는 국제적으로 최하위권이다. 여성의 취학률은 상위권이지만 학력이 높을수록 취업률이 떨어지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여성권한 지수는 1998년 세계102개국 중 83위, 2001년에는 64개국 중 61위에 불과하다. 여성의 권한 확대를 위해서는 사회적 위신과 영향력이 있는 전문직에 여성의 진출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특히 전사회적으로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영향력이 급속히 증대하는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과학기술 분야가 여성의 사회참여와 지위향상에 관건이 된다.

셋째, 바람직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서이다. 근대 과학기술이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과학기술로 발전되었는데, 과거 과학기술 분야에서 소외되었던 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보다 다양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여성 과학기술 인력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배려는 주로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유를 근거로 한다. 여성과학기술인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 여성 과학기술인의 활용을 확대함으로써 국가 과학기술 역량을 높이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법의 모태가 되는 과학기술기본법에서도 여성과학기술인 양성과 활용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그 목적은 국가 과학기술 역량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서 여성 과학기술인의 육성과 지원을 위한 제도적 정비 작업이 시작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제 우리는 시야를 넓혀서 여성의 과학기술계 진출에 대한 확고한 비전의 정립에 나서야 한다. 필자는 앞에서 제시한 세 번째 이유에 대한 보다 현실적이고 진지한 논의가 이런 모색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며, 이런 작업은 기본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하여 결정론(determinism)의 시각에서 벗어나 구성론(constructivism)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본다.

흔히 과학기술은 독자적인 존재양식과 발전 법칙을 갖고 있고, 과학기술이 역사의 원동력으로 사회 변화를 주도한다는 결정론적 인식을 쉽게 접한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우리 인간은 불가항력적인 과학기술 발전에 그저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피동적으로 이끌려갈 수밖에 없다. 정보통신, 생명, 나노, 인공지능 등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유토피아가 실현될 것이라는 환상이나 또는 끔찍한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공포를 불어넣는 전망들 다수가 이런 기술결정론에 입각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전과정이 예정된 경로를 따르는 것이 아니며,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과 사회적 파급효과는 각기 사회에서 각기 다른 시점에서 서로 달리 작용하는 다양한 사회적 변수에 따라, 그리고 누가 어떤 의도를 갖고 그 과정에 관여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연구결과들에 의하여 뒷받침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구성론에서 강조하는 바는 우리의 깨어있는 의식과 지금부터 기울이는 노력이 앞으로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과 우리의 삶의 모습에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과학기술을 만들어내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소외되었고, 따라서 여성이 관심을 갖고 여성에게 문제가 되는 영역은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피임 문제는 직접적으로 남성의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사회적 중요성에 비해서 오랫동안 연구가 소홀했고, 피임의 방법에 대해서도 주로 여성의 피임법에 대한 연구만 이루어졌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 축소와 경제활동 참여 확대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가사노동은 정보기술의 도입에 있어 가장 뒤쳐진 부문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 남성이 주도한 ‘스마트 하우스’(smart house) 프로젝트의 주안점은 주부들의 가사노동 부담을 경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홈바나 홈엔터테인먼트 시설의 질과 자동화에 주어지게 된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minority)로서의 경험을 가진 여성의 눈으로 과학기술을 바라보면 우선 과학기술의 연구와 활용에 있어 새로운 영역에 주목할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자유자재로 문자를 다루는 능력(literacy)이 부와 권력의 원천이었으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 수행하는 데 필수조건이었다. 마찬가지로 정보사회에서는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computer literacy)이 과거의 문자 다루는 능력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지난 20 년 간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정보화의 열기가 뜨거웠던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의 정보화에 어느 정도의 배려가 이루어졌는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물리적 장애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개발과 활용, 보급에 어느 정도의 관심을 기울였는가? 여성의 눈으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집단,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에 기울이는 관심이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길이며, 동시에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과학기술 속의 여성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될 수 있다.

IV.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난 30여 년 간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던 과학기술 관련 페미니즘 운동과 이론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현실적으로는 여성의 과학기술계 진출 기회와 활동 영역, 권한과 영향력이 대폭 확장되었으며, 최근 우리나라에서의 움직임도 결코 이런 서구의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과학기술은 여성이 가장 과소 대표(under-represent)된 분야에 속한다.  미국에서도 여성 과학기술자의 비율은 25% 내외에 불과하며, 진출 분야의 다양성에도 한계가 있다.

그러면 페미니즘이 과학기술 자체에 가져온 변화는 무엇인가? ‘기회의 평등’을 요구하는 데서 출발한 과학기술에 대한 페미니즘 이론이, 1980년대부터는 과학기술의 본질과 이념에 대한 비판으로 방향을 선회하였다. 종래에 사용하던 생물학적 의미의 ‘여성’(woman) 대신 ‘젠더’(gender) 개념을 도입하면서, 여성과 남성, 더 정확히는 ‘여성다움’(feminine)과 ‘남성다움’(masculine)의 ‘차이’를 강조한다. 객관성, 합리성, 보편성, 가치중립성이라는 ‘과학적’ 인식론과 방법론이 남성중심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며, 주관성(subjectivity), 감성(feeling), 협력(cooperation), 감정이입(empathy) 등 과거에 폄하되었던 여성적 가치가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강조하는 페미니즘 이론은 ‘여성 특유의 지식형성 방식’(womens/feminie  ways of knowing)이 있다는 주장도 하는데, 이는 소위 모든 여성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보편적 여성’(universal woman)으로 개념화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페미니즘에서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는 결과가 된다는 비판도 있다. 요컨대 페미니즘 이론은 기존의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직 확고한 대안적 연구프로그램으로 자리잡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의 과학사학자인 론다 쉬빈저(Londa Shiebinger)는 이런 한계의 원인을 다양한 배경과 지향을 가진 서로 다른 집단들 간의 의사소통과 이해 부족으로 인한 균열에서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책입안자 집단은 현실적 과제에 압도되어, 기존의 지식 체계와 제도적 배열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페미니즘 이론의 성과를 수용하지 못한다.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과학기술의 인식론적, 방법론적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데 취약하고, 일부에서는 더욱 정교하고 복잡한 이론과 방법론을 만드는 데 가치를 두고 아카데미즘에 안주하기도 한다. 더욱 큰 균열은 실제로 새로운 연구프로그램으로 새로운 과학기술의 창출을 담당해야 할 과학기술자들 대부분이 이런 페미니즘의 관점과 연구성과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눈’은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여성이 한가지 눈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며, 한 방향만을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여성의 눈은 공유하는 경험, 의식적인 노력과 학습을 통해서 얻어지고 발전한다.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 분야의 여성에 대한 기회의 평등을 요구하고 제도화하는 첫걸음 단계에 있는 지금, 여성 과학기술인과 정책입안자, 페미니스트들이 함께 여성의 눈을 계발하고 연구프로그램으로 정립하여 확산하는 구체적이고 건설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데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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