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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대 이야기

서울대의 행로, 내리막길은 쉽다

2004.09.20 09:17

lee496 조회 수:2747

 

서울대의 행로, 내리막길은 쉽다

홍준형 행정대학원 교수


서울대는 아직 한국 최고의 대학이지만, 욕보이기는 매우 쉽다. 그저 세계 대학 순위, 아니 아․태지역 대학 순위를 비교한 표를 들이밀기만 하면 된다. 500대 대학에도 끼지 못했느니, 150위권에도 들지 못했느니 하는 굴욕적 결과를 들먹이며 국내 최고라지만 잘난 게 뭐가 있느냐며 비아냥거리면 충분하다. 최근 또 다시 그런 일이 반복됐다. 중국 상해 교통대학이 매긴 2004년 전세계 500대 대학 순위에서 서울대는 2003년에 이어 153~201위권에 머물렀다. 500위권 안에 든 국내 대학은 연세대, 한국과학기술원, 포항공대 등 8개뿐이었다. 미국 대학은 20위권에 17개, 100위권에 51개가 선정됐고, 일본도 동경대가 20위권에 들고 100위권에 5개 대학이 포함되는 강세를 보였다.

국내언론들은 앞 다투어 이 사실을 보도했고 서울대는 또 한번 수모를 당했다. 미국 유수의 전문평가기관도 아닌 중국 상해교통대학이 한 것이라 평가절하를 해보고도 싶지만, 중국의 명문대학인데다 평가기준도 상당히 신빙성이 높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평가기준을 들여다보니 다소 위안이 되는 구석도 없지 않다. 평가에서 노벨상과 필즈상의 수상실적을, 교육의 질을 나타내는 동문(Alumni) 항목과 교수의 질 항목 등 두 가지 부문에서 각각 10%, 20%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대는 세 가지 항목, 즉 동문․교수의 노벨상 등 수상실적 30%와 우수연구원확보율 20% 등 총 50% 해당 항목에서 0점을 받았다. 아예 처음부터 높은 순위를 기대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물론 노벨상 등 수상실적 30% 정도를 까먹고도 서울대보다 앞선 순위를 차지한 미국 애리조나대(79위), 일본의 홋카이도대, 구주대, 국립싱가포르대 등(101∼152위)이 있어 부끄러움을 면할 길은 없다. 그러나 50%에 달하는 항목에서 0점을 받은 것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울대가 150위권에도 들지 못한 것을 폄훼한 언론은 그럼 노벨상이나 필즈상을 왜 받지 못했는가 질타할 것이다.


언론 보도에 불만 품기보다 본질 자각해야

내부혁신 어려움과 외부환경 악화 등 문제 심각해


그러나 서울대 입장에서 불만스런 언론 보도만의 문제보다 더 심각하고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의 진면목은 어떤가. 한 때 정부 일각에서 학벌타파의 일환으로 거론된 서울대 폐지론이나 국립대 공동학위제 도입 논란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은 우리의 문제를 우리만 모른다는 것이다. ‘SWOT분석’을 한번 해 보자. 단연 최대의 약점은 기관 이기주의․할거주의로 인한 내부혁신의 애로다. 또 우월한 조직임을 자부하면서도 낯선 우수 인재보다는 양순무구형 인물을 우대하는 잘못된 교수인사 관행은 어떤가. 외부환경으로부터의 위협은 많다. 서울대폐지론이 상징하듯 극단적으로 불리해진 여론, 정부의 지방대 육성정책에 따른 투자우선순위의 급격한 변동과 상황 악화 등등. 반면, 강점이라면 ‘아직까지는’ 우수학생들이 모이고 ‘그래도’ 우수한 교수가 많다는 것이겠지만, 이 역시 이공계기피와 인문학 위기 등을 감안할 때 안정적 전망은 금물이다.


그렇다면 기회는 무엇인가. 아니 도대체 기회는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기회에 관한 한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우리 현주소가 이런데도 ‘아직은 괜찮다’며 ‘아직도 미신’을 붙들고 있지는 않은가. 보직 유무를 불문하고 모든 교수와 직원, 학생들이 함께 머리를 짜내도 시원치 않은데, 우리는 여전히 누가 내 밥그릇을 빼앗아 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어디에 이르는지도 모르는 내리막길을 넋 놓고 편히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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