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화학부 김희준 교수님께서 면접준비에 도움이 되도록 학생들을 위해 쓰신 글입니다.

 

만약 전자 질량이 양성자와 비슷해진다면

주변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물과 금, 그리고 이산화탄소 속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전자가 세력을 키워 양성자의 질량과 비슷해진 것이다. 이러한 가상적인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의 물질들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주위의 사물은 대부분 뚜렷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형태로부터 우리는 아름다움과 안정감을 느낀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사물이 계란 반숙같이 흐물흐물해지면서 단단한 성질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눈앞의 모든 물건의 윤곽이 갑자기 흐트러진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볼 수도 없고, 포옹하는 멋도 없어질 것이다. 건축이나 조각도 있을 수 없고, 라면을 부수어 먹는 재미도 사라질 것이다. 축구공을 차는 재미나 기타를 퉁기는 낭만도 기대할 수 없다.

 

단백질 기능은 구조에 의존

원자의 관점에서도 물질은 뚜렷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의 몸을 1백만 분의 1 정도로 줄여서 원자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상상해 보자. 물분자는 가운데 산소 원자를 중심으로 두 개의 수소 원자가 일정한 거리와 각도를 유지하고 있는 조형물처럼 보일 것이다. 그것은 이산화탄소와 같은 기체 분자나 단백질과 DNA 같은 생체고분자에서도 마찬가지다.

만일 물분자에서 산소와 수소 원자들이 제멋대로 자리바꿈하고 원자 사이의 거리도 일정하지 않다면 물은 물의 성질을 잃어버릴 것이다.

물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의 성질은 원자들의 배열 상태에 달려있다. 단백질 효소의 기능은 전적으로 단백질의 3차원적 구조에 의존한다. 따라서 모든 분자들이 뚜렷한 구조를 가지지 못한다면 분자들의 집단인 물질 세계 전체는 무질서한 원자의 집단으로 바뀌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분자의 모형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H2O(물), C6H12O6(포도당)처럼 확실한 분자식도 쓸 수 없다.

 

자연의 공통 구조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물질이 원자, 분자의 차원에서 뚜렷한 구조를 지닌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런데 모든 물질이 이처럼 특이한 구조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문제의 핵심에는 자연의 공통적인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자연의 구조를 거시적으로 보면 우주에는 1천억 개 정도의 별을 포함하는 은하계가 1천억 개정도 있고, 은하계의 중심에는 엄청난 질량을 가진 블랙홀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속한 은하계인 은하수의 아주 작은 부분인 태양계의 중심에는 태양이 자리잡고 그 주위에는 행성들이 공전한다. 태양의 중심에는 수소의 핵융합으로 생긴 헬륨의 핵이 있고, 지구의 중심에는 철과 니켈의 핵이 있다.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중심에는 세포핵이 자리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위의 모든 물질의 기본 입자인 원자의 중심에는 원자핵이 들어있다.

 

지구가 태양만큼 크다면

사람들은 태양계라는 말을 들으면 중심에 태양이 자리잡고 그 주위에서 타원궤도를 그리는 9개의 행성들을 생각한다. 이것은 중심에 자리잡은 태양이 가장 큰 행성인 목성보다도 훨씬 더 무겁기 때문에 타당하다. 태양과 이들 행성 사이, 그리고 행성과 행성 사이에는 만유인력이 작용해서 서로 끌어당긴다. 그리고 뉴턴의 작용-반작용 법칙에 따라 태양이 지구를 끌어당기는 것과 똑같은 크기의 힘으로 지구도 태양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힘이 가해지면 그 물체의 질량에 따라 가속도를 받는다(F=ma). 그러나 같은 힘(F)이 작용해도 질량(m)이 작은 지구는 큰 가속도(a)를 받아서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지만, 질량이 큰 태양은 별로 가속도를 받지 않아서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있게 된다.

그런데 만일 지구가 점점 커져서 태양과 질량이 비슷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 때는 누가 누구의 주위를 회전하는지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즉 서로 상대방의 주위를 도는 상황이니 아주 유동적인 모습이 될 거란 말이다.

 

전자가 양성자만큼 무겁다면

원자의 구조는 중심에 무거운 핵이 있고 그 주위를 가벼운 전자들이 돌고 있다는 점에서 태양계의 구조와 상당히 유사하다. 가장 간단한 원자인 수소의 중심에는 양성자가 원자핵을 이루고 단 하나의 전자가 그 주위를 회전한다.

이번에는 고대부터 인간의 욕망을 대변해 온 금을 생각해보자. 금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부와 권력의 상징이다. 금의 중심에는 79개의 양성자와 그보다 많은 중성자들로 이루어진 금의 원자핵이 있고 이 원자핵의 주위에는 79개의 전자들이 구름같이 퍼져서 돌고 있다. 원자의 세계로 들어가서 금관을 본다면 금 원자들이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전자들이 자유롭게 흘러 다니면서 열이나 전류를 전달하는 것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치 한강대교의 교각(금 이온)들이 규칙적으로 튼튼하게 자리를 잡고, 그 사이로 한강 물(전자)이 흐르는 것처럼 말이다.

전자가 수소나 금 원자핵의 주위를 도는 것은 전자의 질량이 양성자 질량의 1천8백40분의 1 정도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의 질량이 양성자의 질량과 비슷하다면 원자는 중심을 정의하기 어려운 상태가 될 것이고 금관은 녹은 엿가락처럼 흐물흐물해질 것이다. 다행히도 현재의 원자핵은 전자의 운동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정해진 위치를 든든히 지킨다. 비록 음전기를 가진 전자가 양전기를 가진 원자핵을 전기적으로 끌어당기더라도 말이다.

그럼 전자가 양성자 정도로 무거워진다면 물이나 이산화탄소같이 유동적인 액체나 기체들은 어떻게 될까. 우선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액체나 기체가 유동적인 이유는 확고한 분자 구조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분자와 분자 사이의 상호 작용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즉 물은 수소-산소-수소 사이에 104.5도라는 확실한 각도를 가지고 있고, 이산화탄소는 산소-탄소-산소가 일직선으로 늘어선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온에서 분자들이 고체 물질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때문에 유체다.

그런데 만일 전자들이 훨씬 무거워진다면 전자들은 위치가 고정된 수소-산소-수소 원자들 사이의 결합을 지탱해주는 대신 이들 원자핵의 위치를 뒤흔들어 놓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물이라는 분자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자신에 맞는 역할과 공간 배정

이런 면들을 생각해보면 전자, 양성자, 중성자의 질량은 적당히 정해진 것이 아니라 원자 세계에서 각각의 기능과 역할에 맞게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원자 세계에서 양성자, 중성자, 전자의 고유한 역할은 무엇일까.

우선 중성자는 전기적으로 반발하는 양성자들을 강한 핵력으로 원자핵 속에 붙잡아 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다행히 강한 핵력은 전자기력보다 1백 배나 강한 힘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 만일 중성자가 없다면 헬륨 이상의 모든 원소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수소만의 우주를 상상해 보라.

원자의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자리한 양성자는 전자기력으로 전자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전자의 에너지와 오비탈의 모양 등 전자의 모든 행동 양식을 결정한다. 이처럼 원자의 핵심 세력인 양성자와 양성자들을 묶어 주어 1백가지 정도의 다른 원소들을 가능하게 하는 중성자는 양성자와 함께 원자의 핵을 형성한다.

반면 전자는 질량이 작은 대신 매우 활발히 돌아다니면서 이웃 원자핵들을 붙잡아 화학결합을 가능하게 만든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분자 구조는 전적으로 가벼운 전자가 결정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실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위치도 제대로 정의가 되지 않아서 기껏 구름으로 나타내는 전자가 자신보다 수천 배나 무거운 원자핵들의 3차원 공간 위치를 정해준다. 원자핵들 사이의 거리와 각도 모두를 말이다. 전자는 고된 역할을 맡은 대신 원자의 거의 전 공간을 자신의 영역으로 배정 받았다. 역할 분담에 적합한 공간 안배가 이뤄진 것이다.

인간 세계에도 서로 배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개 역할을 하는 중성자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핵심 위치에서 남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양성자형 인간도 있다. 그리고 전국을 누비면서 실무를 담당하는 전자형 인간도 있다.

만일 전자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질량을 상당히 부풀린다면 양성자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은 틀림없지만 반대로 자신의 행동 반경은 적지 않게 축소되고 말 것이다. 그 결과 원자간 화학결합을 이루는 전자의 고유한 역할은 퇴색되고 양성자도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양성자와 전자가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틈에 분자는 분자로서의 구조와 특성을 잃어버리고 우리 주위의 물질 세계는 거대한 혼돈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물은 물이다. 그런데 물이 물인 이유는 전자가 겸손하게 자신의 크기를 인정하고 자신의 역할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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