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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대 이야기

대륙은 살아 있다

2005.11.23 10:00

hanabaro 조회 수:4091

 

세계지도를 유심히 살펴 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남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의 해안선 모양에 눈길이 간 적이 있을 것이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은 크기도 엇비슷하거니와, 특히 아프리카의 서부 해안선과 남아메리카의 동부 해안선은 모양이 아주 흡사해서, 마치 조각 그림맞추기를 하면 아주 잘 들어맞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조금만 생각을 보탠다면, 애초에 이 두 대륙은 하나였는데, 나중에 분리되어 이동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실제로 처음 한 사람은 독일의 지구과학자이며 탐험가인 베게너(Alfred L. Wegener; 1880-1930)였다. 1880년 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시절 천문학을 공부하였고, 졸업 후에는 왕립기상관측소에서 일하면서 기상학, 지질학, 고생물학 등을 폭넓게 연구하였다. 또한, 기구를 타고 공중을 여행하기도 하고, 개썰매로 그린랜드와 북극을 탐험하는 등, 탐험가이자 과학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그가 대륙이동설을 처음 떠올린 것은 1910년 무렵이었는데, 북극탐험에서 돌아 와서 세계지도를 들여다 보고 있다가,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동부해안선과 아프리카 카메루운 일대의 서부해안선이 너무도 비슷한 모양인 것을 발견하였다.

 

그가 본 세계지도는, 태평양이 가운데에 표시된 아시아식과는 달리, 대서양을 가운데에 두고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었으므로, 그는 두 대륙이 처음에는 하나로 붙어 있다가 분리되어서 이동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베게너 자신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으나, 한 고생물학자의 연구논문에도 두 대륙이 옛날에는 연결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 있어서, 더욱 대륙이동설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관련된 지질학, 고생물학 자료들을 널리 수집하고 연구한 그는, 1912년에 대륙이동설에 대한 자신의 첫 논문을 발표하였고, 1915년에는 지질학사에 길이 남을 만한 중요한 저서인 ‘대륙과 해양의 기원’이라는 책을 써서 출판하였다.

 

“전 세계의 대륙은 원래에는 판게아(Pangaea)라는 초대륙으로서 한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으나, 지금으로부터 3억년 전 쯤에 분열하기 시작해서, 각 부분이 동서, 남북으로 계속 이동한 결과, 약 100만년전 쯤에는 지금과 같은 5대양 6대주의 모습을 형성하게 되었다.“ 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고, 이것에 의해 바다와 산맥의 형성, 섬의 생성과 소멸 등의 여러 문제들도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베게너의 견해에 관하여, 세계 지질학계는 격심한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대륙이 움직인다.는 황당하고 생소한 주장에 보수적인 대다수정통 지질학자들의 반박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대륙은 영구불변하며, 다만 침식에 의하여 표면이 깎여 나갈 뿐이라는 생각이 당시 학계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게너는 자신의 대륙이동설이 단순히 세계지도에 의한 ‘조각그림 맞추기’의 산물이 아니라, 단층구조, 산맥 등 분리된 대륙들의 주변 지형이 유사한 데다가,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대륙의 양안에 비슷한 동물이 살았다는 등, 여러가지 지질학적, 고생물학적 증거들을 거론하였다. 이에 대하여, 반대론자들은 분리된 양 대륙이 옛날에는 육교모양의 긴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가 바다밑으로 가라 앉았다는 둥, 더욱 희안한 반론을 펴기도 하였으나, 당시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에는 매우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무엇보다도, “정말로 대륙이 이동하였다면 그 힘의 원천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였다. 여기에 대해서 베게너자신도 만족할 만한 견해를 내놓지는 못했다.

 

지구의 모습에 따른 중력의 차이나 달에 의한 조석력 등을 들기도 하였으나, 대륙을 이동시킬 정도의 엄청난 힘으로 보기에는 무리였고, 반대론자들을 설득시킬 만한 근거를 베게너는 끝내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는 자신의 대륙이동설을 입증할 만한 새로운 증거를 찾기 위해, 1930년 제4차 그린랜드 원정을 떠났으나, 11월1일 아침 눈보라 속에서 개썰매를 끌고 강행군을 한 끝에 결국 그곳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의 시신은 이듬해에야 발견되었고, 베게너의 죽음과 함께 대륙이동설도 지질학계에서 차츰 잊혀져 갔다.

 

베게너는 비록 생전에는 자신의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나, 그가 죽은지 20여년이 지난 후 대륙이동설의 부활을 알리는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부터 고지자기학의 연구가 활발해 지면서, 여러 곳의 잔류자기를 측정해 본 결과, 대륙이동설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들이 발견되었다. 지구의 자극이 계속 변해왔기 때문에, 과거 지자기의 방향이 옛 암석들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고, 이들의 위치를 추적한 결과, 대륙이동설은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임이 입증되었던 것이다. 또한, 심해저의 연구 결과, 베게너가 생전에 입증하지 못해 애태웠던 대륙이동의 원천적 힘은 맨틀의 대류임이 밝혀졌다.

 

오늘날에는 맨틀대류설과 아울러, 여러 대륙이 몇 개의 판으로 이루어져, 이들이 맨틀 위를 떠다니면서 이동한다는 판구조론이 지구과학계의 중요한 정설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이 그 밑바탕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베게너 역시 생물학에서의 멘델의 경우처럼, 비록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이후 지구과학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한국과학기술평론가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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