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공대생들의 글쓰기

2005.01.24 09:28

lee496 조회 수:6220

공대생들의 글쓰기


이은석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 글쓰기교실 연구조교


글쓰기교실에서 이공계 학생의 리포트를 상담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이공계 학생들이 리포트 상담을 위해 글쓰기교실을 찾을 때는 그 리포트의 수업이 핵심교양 수업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신의 전공 수업 리포트 때문에 상담을 청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실제로 2003년 2학기에 글쓰기교실에서 이루어진 모든 리포트 상담 중 이공계열 전공 수업의 리포트가 신청된 경우는 전체 리포트 상담의 3%에 불과했다.


이러한 불균형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이공계 학생들이 글쓰기를 싫어한다거나 그 동안의 글쓰기 연습이 부족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의 해석은 사실 모든 학생에게 적용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글을 쓰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자신의 리포트를 상담 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리포트 상담을 기피하는 이유를 학생들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학생들을 둘러싼 구조적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공계 학생들과의 상담을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먼저 이공계 수업의 과제 유형을 보면 순전히 ‘글자’만 써서 과제를 제출할 수 있는 경우가 없다. 이는 저학년일수록 뚜렷하게 나타난다. 물론 교양수업을 제외했을 때의 경우다. 대개 전공 수업이나 전공 기반 수업인 경우 수식이나 알고리즘(혹은 간단한 글로 표현하는 의사pseudo擬似 알고리즘) 수립, 증명과 정리, 각종 표나 그래프 등으로 이루어진 리포트, 답안지가 과제 유형이 된다. 이는 음표와 음 자체를 사용해야 하는 음대나, 시각 표상을 주로 사용해야 하는 미대의 경우에도 동일하다. 글을 쓰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과제 유형은 당연한 것이다. 이공계 전공 특성상,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소화하고 연습하는 데만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 각 학문 분야에는 그 분야에만 특수한 기호체계가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며,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한 학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기호체계에 익숙해지는 것은 이공계 학생에게 필수적인 숙제가 된다.


많은 양의 과제가 이공계 학생에게 부여된다. 주로 과제의 성격은 문제를 푸는 것이다. 수많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학생은 자기 분야의 기호체계에 익숙해지고, 자신의 생각을 그 기호체계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이러한 훈련과정이 물론 필요하지만, 때로는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고유의 목적을 잊고 문제를 푸는 기술만을 체득하는 데 집중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 기술만 잘 닦아도 얼마든지 그것만으로도 인정을 받을 수도 있다. 산업계에서는 졸업 후 바로 현장에서 쓸 수 있는 테크니션을 필요로 한다는 식의 주장에 얽힌, 좀더 거시적인 문제도 절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공계의 특수한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공계 학생들은 핵심교양 수업을 통해 제출해야 하는 과제의 유형에 당혹감을 많이 느낀다. 평소 자신이 해야 하는 과제와는 판이한 ‘기호체계’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담감은 학생의 리포트에 그대로 반영된다.


(...) 아마 제가 수의예과여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조가 발표되고 그 주제를 보니 조선시대 붕당정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과인 저에게는 참으로 난감한 주제였습니다. 솔직히 어느 주제를 주더라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을 테지요. (...)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솔직히 조사를 하고도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연과학대학 수의예과 학생, <한국사의 재조명>)


(...) 나는 <역사 스페셜> 등의 프로그램들을 즐겨 보는 편이다. (...) 많은 시간이 지남에도 아직 그때의 감동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 나에겐 매우 큰 충격이 아니었음을 다시 깨닫곤 한다. 실제로 고구려가 정확히 어디까지 세력을 미쳤는지는 고대사 전공도 아닌 일개 학생으로서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 (공과대학 기계항공공학부 학생, <한국사의 재조명>)


자신의 무지를 글 속에서 일부러 비치는 현상이 학생들의 글에서 자주 보인다. 인문계 학생들의 글에서는 좀처럼 이런 부분을 보기 힘들다. 아마 위의 학생들도 자신의 전공 리포트였다면 그렇게 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실 자신이 ‘무지’해서라고 생각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이공계임을 알리려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이공계임을 강조해서 알리는가. 그것은 이공계 고유의 교육환경에 익숙해진 자신이 글자로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의 반영이다. 다시 말해 과제 유형 자체에 대해 자신은 익숙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공계 학생들이 글쓰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글쓰기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을 하는 과정의 산물’임을 곧잘 잊는다. 전공 수업의 과제만 자신이 ‘생각’해야 하고, 타 분야 수업의 ‘글’을 쓰는 과제는 자신의 생각에다 뭔가를 (억지로) 더해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글을 일종의 포장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은 모든 학생들에게서 전반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공계 수업의 경우는 이런 경향이 두드러져 보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이 기술해야 할 자신의 생각은 몇 개의 수식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있다. 물론 단순히 문제의 답만 제출하는 저학년 수업이 아닌 경우에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수식의 전개와 그 해의 도출과정이 이미 널리 알려지고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은 하나로 정해져 있는 ‘생각의 절차’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럴 경우 학생들은 이 ‘생각의 절차’를 외우게 마련이다. 정답이 정해져 있고 정답을 도출하는 절차가 사실상 정해져 있는데, 그것 말고 글을 더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라는 과제를 받는다면 이미 그때의 글은 리포트의 포장 수단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이미 핵심은 다 정해져 있고, 나머지를 수습하는 차원에서 글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정해져 있는 ‘생각의 절차’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것들을 습득하는 데만도 학부 생활을 다 보내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생각을 계속 하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일 수 있다.


글을 포장 수단으로 대하게 되면 당연히 글을 쓰는 것이 불필요하게 느껴지고,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쓰는 경우가 늘어나고, 경우에 따라서는 부담감이 가중되어 타 분야 수업을 기피하는 경우도 생긴다. 핵심교양 수업을 짜증나는 의무로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이로 인해 글쓰기 자체에 대해 안 좋은 인상을 갖게 되기도 한다. 상담 중에 학생이 “이제 이 수업만 들으면 (핵심교양 수업은) 끝이다” “다시는 문과 계열 수업을 듣지 않겠다”는 등 자신의 고충을 토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신의 리포트가 ‘맞나 틀리나’ 봐주기를 바라는 학생도 볼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을 대강이나마 돌이켜보는 것은 글쓰기의 역할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 하기 위해서다. 글을 쓰는 과정은 타인에게 필요한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내고 다듬는 것에 다름아니다. 그래서 학문은 곧 글을 쓰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편적인 문자체계를 이용하여 학문을 하는 것과 특정 기호체계를 이용하여 학문을 하는 것에 근본적인 다름이 있다고 단정 지으려는 바르지 못한 경향이 이공계 학생의 글쓰기에 부담을 주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자신의 전공에서의 문제 해결 절차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글쓰기의 과정 자체가 학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보편적인 작업 형태이자 수단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글쓰기의 기본 절차가 문제제기, 핵심주장, 자료분석 및 구성, 논지전개, 결론 수립 등의 뼈대를 이루고 있음을 상기하면, 어떤 학문 분야에서도 그 방법론이 원칙적으로 이 틀을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요컨대 자신이 ‘그냥 글로만’ 작성한 글에서도, 자신의 전공 리포트에서 필요했던 똑같은 추상적 사고 절차와 작업이 유비적으로,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현재 기술 보고서에서부터, 복잡한 문제 해결 과정이나 증명과 정리, 공리 도출에 이르기까지, 위의 글쓰기 절차를 벗어나는 것은 없다. 무엇을 사용하든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만들고 다듬는 데 쓰이는 것이고, 그 수단에 자신이 익숙한지 아닌지는 차후의 문제다. 결국 핵심은 타인에게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생각이 새롭고 유용하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이고, 그런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보편 문자체계나 특정 기호체계를 (혹은 둘 다) 사용한 ‘글쓰기’가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공과계열 학생 대부분은 ‘푸리에 전환Fourier Transform’에 관한 문제풀이로 학부 생활을 다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푸리에 전환이 어째서 중요한지를 ‘진정으로’(늘 안다고 생각했지만) 깨닫는 것은 정작 대학원에 들어가 자신의 연구를 시작했을 때인 경우가 많다. 비슷한 예로, 영문학을 전공하는 학생 대부분 또한 왜 오비디우스의 <변신Metamorphoses>을 그렇게 힘들게 번역해가며 읽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 이유를 진정으로 깨닫는 것은 역시 자신의 연구를 시작한 다음인 경우가 많다. 왜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뒤늦게 깨달음이 오는가. 또 그러한 깨달음이 과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주요 수단의 종류’와 얼마나 상관이 있는가, 스스로 물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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