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이건 미친 아이디어야. 성공할 리가 없어.”


2010년 당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였던 한승용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초전도 코일에서 절연체를 빼자는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내놓자, MIT 동료 교수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1911년 처음으로 발견된 초전도 현상은 0K(절대온도 0도₩영하 273.15도) 근처에서 물질의 전기 저항이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성질을 가진 물질을 초전도체라고 한다.

 

초전도 자석은 초전도 전선을 둘둘 말아놓은 형태로, 전류가 흐르면 중앙의 빈 공간에 강한 자기장이 생긴다. 감긴 전선을 따라 나선형으로 전류가 흘러야 일정한 방향으로 자기장이 형성된다. 저항은 전류의 흐름을 방해하는 성질인 만큼 저항이 없는 초전도 전선에는 전류가 매우 원활하게 흐른다.

 

문제는 초전도 전선이 감겨있는 방향을 따라서만 전류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전류가 옆에 붙어 있는 전선으로도 흐른다. 나선형으로 전류가 흐르면서 동시에 초전도 코일 중심을 기준으로 방사형으로도 전류가 흐르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초전도 전선과 전선 사이에는 얇은 절연체를 끼운다. 절연체가 저항의 역할을 하면서 전류는 자연스럽게 저항이 없는 전선을 따라서만 흐르게 된다. 절연체를 빼자는 한 교수의 제안이 ‘미친 아이디어’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절연체 버리고 초전도 자석 난제 ‘톊치’ 해결


한 교수가 절연체를 빼겠다는 생각에 이른 건 코일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금속인 초전도 전선에 비해 절연체는 물렁물렁하다. 전류가 흐르고 자기장이 발생하면, 자기장에 수직방향으로 ‘로렌츠 힘’이 발생한다. 전선은 이 힘을 견딜 만큼 단단하지만, 절연체에는 물리적인 변형이 일어난다.

 

그간 학계에서는 이 변형을 막기 위해 절연체의 재료를 바꾸는 등 다방면으로 연구해 왔다. 그런데 한 교수가 과감하게 절연체를 빼버린 것이다. 이 방식을 초전도 자석 중에서도 ‘무절연(no insulation)’ 방식이라고 부른다.

 

이 결정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됐다. 코일의 내구성은 높아졌고, 전선과 전선이 닿아서 생기는 접촉 저항만으로도 전류가 나선형으로 흐르는 데 문제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절연체를 없애면서 초전도 자석의 고질적인 문제가 사라졌다. ‘텾치(quench)’를 해결한 것이다.

 


초전도 전선에 많은 양의 전류가 한꺼번에 흐르면 순간적으로 전선 일부가 초전도성을 잃어버리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텾치라고 한다. 텾치가 발생하면 갑자기 도로가 끊긴 것처럼 전류가 흐르는 길이 사라지고, 그 부위에 열이 발생하면서 1초도 되지 않아 전선이 다 타버린다. 한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초전도 학회에서 텾치 현상은 언급하면 안 되는 금기 조항 같은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만큼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하지만 한 교수가 절연체를 뺀 초전도 코일을 만들자, 텾치 현상이 일어나도 전선이 타지 않았다. 이전에는 전선과 전선 사이를 절연체가 막고 있어, 바로 옆 전선으로 전류가 분산되지 못하고 결국 텾치가 발생했다. 하지만 절연체를 없애자 전선 일부에서 텾치가 나타나도 옆의 전선을 타고 전류가 흐르면서 열이 과도하게 발생하지 않았다.

 

한 교수는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을 2011년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가 발행하는 저널 ‘초전도 응용 처리’에 발표했다. 이 논문은 학계에서 초전도 자석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 초전도 관련 국제학회에서는 무절연 세션이 별도로 마련되기도 했다.

 

절연체가 사라지면서 초전도 자석의 크기가 대폭 줄었다. 4m에 이르던 초전도 코일의 지름은 1.2m로 3배 이상 작아졌고, 무게도 130t(톤)에서 6t으로 20배 이상 가벼워졌다.

 

韓 중이온가속기에 활용


국내에서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이 중이온가속기에 무절연 초전도 자석을 도입했다. 중이온가속기는 전자 같은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는 장비로, 이때 입자가 지나가는 가속관에 초전도 자석이 사용된다. 하지만 입자들이 코일에 닿으면서 텾치 현상이 발생해 골치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속관에 한 교수가 개발한 무절연 초전도 자석을 넣었다.

 

초전도 자석은 기초과학부터 응용과학까지 활용범위가 매우 넓다. 미국 고(高)자기장국립연구소(NHMFL), 중국과학원 고자기장연구소(CHMFL), 프랑스 그레노블 고자기장연구소 등은 초전도 자석을 이용해 고자기장 연구를 독립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한 교수는 “초전도 자석은 산업적 가치가 크다”며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가속기 등은 물론 신재생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거대 장비의 규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글 : 최지원 기자
사진 : 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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