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기술경영자, 정책입안자로서의 미래


이성해 국무총리 수질개선기획단 수자원관리과장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 학사(’92)

          (英)리즈대학교 교통공학 석사(’97)

제27회 기술고등고시(’91)

          건설교통부(’92~’02)

          국무총리 수질개선기획단(’02~현재)


   들어가는 말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의 소개와 관련한 현황, 전망을 포함하여 재학 중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으로 글을 쓰려고 고민한 끝에 학교를 졸업한 이후 나의 경험을 토대로 솔직한 느낌을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이공계출신 공직자로서의 소회와 향후전망을 얘기하고자 한다. 우선 본인소개를 간단히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19년 전인 85년에 서울공대 토목공학과(지금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로 통합)에 입학한 후 군복무를 마치고 92년에 졸업하면서 바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건설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기술고등고시에 합격하여 사무관(5급)으로서 중앙부처에서 근무를 시작하였고 2년 전에 서기관으로 승진하여 지금은 국무총리실 수질개선기획단에서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어찌 생각하면 공과대학을 졸업해서 설계회사나 시공회사가 아닌 관공서에서 근무하는 것이 전공과는 동떨어진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기술자로서 정책입안에 관여하거나 행정을 담당하는 것이 기술자의 중요한 역할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토목공학과 국가 등 공공기관의 관계

  지금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로 통합되어 있지만 내가 전공한 토목공학을 중심으로 이것이 공직생활과 어떻게 연관되고 앞으로 어떤 역학들이 될 것인지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토목공학하면 도로, 지하철, 항만, 공항, 택지개발 등 건축물을 제외한 건설사업을 연상하게 된다. 즉, 우리사회와 도시의 기초를 이루는 각종 기반시설을 계획하고 설계․시공한 후 관리하는 일련의 과정이 토목공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토목공학에서 토목이라는 말은 한자성어 “築土構木”에서 비롯되었는데 결국은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하는 모든 건설활동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 동양권에서는 치산치수(治山治水)가 국치의 기본이라 하여 치수사업을 중심으로 건설활동이 이루어졌고, 로마시대에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도로와 수도건설을 매우 중시하였다. 또한, 로마시대에 식민도시의 건설은 그들의 통치구조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이야기”(특히 10권은 사회간접자본만 다루고 있다)를 보면 로마인들이 사회간접자본(Infrastructure)을 얼마나 중시하였는지 잘 알 수 있다. 누가 어떤 가도(街道)를 건설하고 누가 어떤 수도(水道)를 만들고 하는 것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중요한 가도나 수도를 건설한 사람은 개선식을 치르면서 그 시설물의 완공을 축하하였고, 기념비를 세우곤 하였다. 오늘날에도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을 계획하고 건설하는 일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영국의 도버해협을 해저를 관통하는 터널(Channel Tunnel)이나 일본의 세토대교 등은 인류가 만든 위대한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2000년 7월 완공되어 덴마크와 스웨덴을 연결하는 Oresund Bridge는 유럽연합의 지폐인 유로화의 도안으로 채택되어 유럽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원하게 뚫린 서해대교를 지나면서 사람들은 “정말로 대단해!”라고 칭송한다. 또한 최근에 시험운전에서 시속 300㎞를 돌파한 고속철도가 완공되면 큰 화제거리가 될 것이다.

  로마시대에 도로와 수도를 건설하고, 동양에서 치수사업을 시행하고 했던 것들이 모두 개인이 아닌 국가권력이나 공권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사회간접자본을 계획하고 설계․시공하고 관리하는 데 있어서는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고 이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은 짧은 기간에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개인이 혼자서 가질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사회가 경제발전의 잠재력을 키우고 사회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따라서 개인이 이를 계획하고 건설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국가나 공공기관이 국민의 세금으로 건설하는 것이 통상적이다.(물론 최근에는 “민간투자사업”이라 하여 일부 도로나 항만 등은 민간기업이 투자하기도 한다)


  기술직 공무원의 역할과 보람

  여기서 기술공무원으로서의 역할이 부각된다. 각종 사회간접자본시설의 필요성을 판단하고 어느 곳에, 언제 그러한 사회간접자본시설을 건설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기술직공무원의 역할인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물수요와 물공급능력을 판단하고 모자란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전국을 대상으로 댐건설의 적지를 찾아내고 그 곳에 댐을 건설하는 기본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기술직공무원이 하는 일 중에서 중요한 것이다. 앞서 얘기하였지만 사회간접자본시설은 계획․설계․시공․관리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공무원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계획단계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간접자본이 태동할 수 있도록 초기단계에서 기술직공무원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과거에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설계․시공기술이 낙후되어 있을 때는 설계․시공도 공무원이 직접 담당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 부분을 역량이 크게 향상된 민간부문이 주로 담당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술직공무원은 여러 가지 선택 가능한 대안들을 만들고 이중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타당하고 경제적인 대안을 선택하여 이것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집행해 나가는 것이다. 사회간접자본이 국가권력이나 공권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할 때 공공기관에서 이를 담당하는 기술직공무원의 역할은 결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직공무원은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은 피와 같은 국민세금의 낭비로 이어질 뿐만 아니라, 후세에게도 커다란 짐을 남겨 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전도를 펼쳐놓고 각종 도로노선을 검토하고, 철도의 경유지를 판단하는 일은 그 스케일이나 중요도에 있어서 다른 어떠한 일보다도 커다란 쾌감을 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자기가 계획한 어마어마한 시설물이 완공되어 자기 눈앞에 펼쳐질 때의 감동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기술직공무원이 하는 일은 직접적으로 자신의 전공과 관련하여 사회간접자본을 계획하고 설계․시공을 주도적으로 관리하는 데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자신의 전공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사회갈등을 해결하고 중재하기 위한 행정업무에도 많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도시계획을 수립할 때 도시내 기본적인 도로망의 구성이라든지 이를 기초로 한 구체적인 토지용도의 지정 등에 있어서 기술적인 판단기준을 제공함으로써 이해관계자들로 하여금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객관적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한다. 또한, 사회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입안하는 데 있어서도 기술직 공무원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지식을 가진 행정가들이 간과하기 쉬운 요소를 찾아내어 정책수립과정에 반영함으로써 정책실행단계에서의 실현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또한 건설산업과 관련된 각종 제도개선에 있어서 현장의 실정과 설계․시공과정의 진행과정에 익숙한 기술직공무원은 정확한 문제점 지적과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테크노크라트의 역할과 이공계 출신자의 공직진출 확대 필요성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와 이코노크라트(Econocrat)를 비교하기도 한다. 이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 관료와 경제학을 중심으로 한 사회과학을 기반으로 한 관료를 비교하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경제2수석을 지낸 오원철씨가 비교한 내용인데, 오원철씨의 홈페이지(검색사이트에서 “오원철” 입력)에서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이코노크라트는 추상적, 관념적인 개념에 입각하여 정책을 수립하는 반면, 테크노크라트는 구체성과 실현가능성을 보다 염두에 두고 정책을 수립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는 바른 분석이라고 본다. 기술직공무원은 특정한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실현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각 단계마다의 결정요소 내지는 제약요소를 정확히 찾아내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반면에, 일반적인 행정가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약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과학기술적 마인드를 가지고 국가정책을 입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웅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자가 보다 많이 공직사회에 진출하여 국가의 핵심적인 정책수립에 참여하여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과학기술적 요소들이 경제활동과 국민생활 그리고 국가비젼 마련과 정책수립에도 미치는 영향이 커지게 되므로 과학기술적 마인드를 가진 공직자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비싼 돈을 주고 공과대학에서 익힌 지식을 가지고 현업부서에서 전공지식을 발휘하지 않아도 정책부서 또는 중앙부처에서 일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등소평 등장 이후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고 앞으로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막강한 영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은 권력의 핵심부가 모두 테크노크라트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처럼 경제발전의 초기에 있는 중국과 같은 국가뿐만 아니라 미국 등 자본주의가 이미 성숙된 국가에서도 테크노크라트의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Techno-MBA, Techno-Lawyer등 학부에서 공학이나 과학을 전공한 우수한 인재가 사회 각 분야에서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고, 정부의 요직에서 높은 사회적인 대우와 경제적인 보상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우리사회가 이제는 소득 1만불의 벽을 넘어서 2만불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의 역량을 집중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목표를 위해서는 우리만의 원천기술, 우리만이 강점을 가지는 독자기술을 가지지 아니하고는 선진국의 대열에 진입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기술개발은 정부 혼자만 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오히려 역량이 강화된 민간기업과 단체에서 보다 역동적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민간의 연구개발을 진흥하고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이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정책수립에 보다 많은 과학기술계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은 바로 과학기술자가 그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단시간에 성과가 나오기도 어렵고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과학기술연구의 특성을 알고 있고 과학기술을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이 정책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핵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국가발전의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이 이루어진다. 그러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과학기술적 마인드를 가진 공직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공계 출신자의 공직진출확대가 중요하다. 지난 8월 청와대는 “이공계 공직진출 확대방안”이란 것을 내 놓았다. 2008년까지 중앙부처 과장급인 4급 이상 기술직공무원의 비율을 30%로 확대하고 5급공무원 신규채용시 이공계 출신을 50%까지 늘려나간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행정고시 이외에 특별채용을 통해 과학기술분야 전공자의 공직진출을 확대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계획이 제대로 실천된다면 앞으로 이공계출신자가 국가의 핵심적인 정책수립에 참여하는 기회가 획기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기술자로서의 정체성 정립

  공학을 전공한 기술자를 「Engineer」라 한다. 이 말에는 Technology라는 의미와 함께 Management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과학적인 사고와 발견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기술을 실제의 생산과정과 생활에 접목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수용가능한 수단을 만들고 그 생산과정을 관리해 나가는 것이 Engineer의 역할이다. 이 말은 기술자의 역할이 과학적인 발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회의 자원을 조직하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모든 과정이 과학기술자의 역할로서 주어진다는 것이다. 사실상 민간기업에서도 기술자의 역할은 생산현장의 문제해결에만 그치지 않는다. 만들어진 물건을 팔기 위한 영업에서도 기술자의 몫은 결정적이다. 세계적인 제품의 조류를 판단하여 향후 기술개발의 방향을 결정짓고 그에 필요한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 자본가를 설득하는 것도 기술자의 몫이다. 사실 선진외국에서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줄지 여부를 판단하는 직위에도 기술자가 앉아 있다. 즉 기술자는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고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경영자이며 정책입안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진정한 기술자로서 바람직한 정체성을 확립하기 어렵다. 이런 차원에서 공과대학의 교육에서 경영인자로서 그리고 정책입안자로서 필요한 내용이 보강되어야 한다고 본다.

  기술직공무원은 외견상으로는 전공과 동떨어진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공직자로서 국가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기술자의 고유영역중의 하나이다. 특히 공공기관에서 아이디어가 태동되고 공공기관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루어지는 사회간접자본의 건설과 관리에 있어서 기술직공무원의 역할은 의사결정의 정점에 위치하면서 그 중요성과 책임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사익(私益)보다는 공익(公益)을 위해 봉사한다는 기쁨은 공무원의 업무만족도를 높여주는 가장 큰 요소이다. 더욱이 우리사회가 고도화되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공직사회에서 기술자의 역할은 증대된다. 앞으로 이공계 출신자의 공직진출 기회가 획기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경영자로서 그리고 정책결정자로서 자질을 갖춘 기술자들이 보다 많이 공직에 지원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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