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건축가로 살기            


                                              황두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소장


서울대 건축학과 학사(´86)

서울대 대학원 건축학과 석사(´88)

미국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 석사(´93)

서울건축 근무(´89-´90)

미국 Tai Soo Kim Partners 근무(´93-´96)

TSKP 건축사사무소 대표(´97-´00)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00-현재)                        

  올해로 건축공부를 시작한지 20년이 되었다. 공대 입학 당시 나는 전공에 대해 이러다할 계획이 없었다. 원래 물리학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고 문학, 언어, 음악 등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막상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는 일종의 판단유보인 상태로 대학에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건축학과에 진학하게 되고 결국 지금처럼 건축가가 된 것에는 일종의 우연적인 요소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공과대학은 과별 모집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1학년 때 여러 개의 반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나는 공대 1반이었다. 700명에 달하는 1학년생들에게 소속감을 주기 위해서 학교에서는 각 반과 각 과를 서로 연결시켜주었다. 가나다순으로 하면 건축학과가 제일 앞이기 때문에 우리 반과 건축학과가 일종의 자매 결연을 맺게 되었다.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도교수 면담이라는 것이 있었고 나는 이참에 전공 선택에 관한 문의를 드리려던 참이었다. 공대에서도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35동의 건축학과를 찾아 갔을 때 마침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복도를 서성거리다가 나는 정말 놀라운 것들을 보았다. 사방에 각종 도면이며 모형들이 붙어 있었다. 학생들 작품을 전시해 놓은 것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뭔가 뚝딱거리고 만드는 것을 참 좋아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평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이 있었던 것이다. 곧이어 지도교수님을 만난 나는 건축학과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했고, 방을 나오면서 ‘내년에 뵙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만드는 것이 재미있어서’ 건축을 시작했고 지금도 그 단순하기 짝이 없는 생각을 갖고는 있지만 건축에 대한 생각은 많이 변했다. 많은 사람들이 건축이 ‘예술이냐 기술이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지금 나는 그런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건축은 다른 분야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로만 설명할 수 없는 엄연히 독자적인 분야라는 것이다. 결국 ‘건축은 건축이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건축에는 공공성이 있다

깊은 산 속에 지어지는 집이라 할지라도 주위환경과 그 나름의 관계를 맺는다. 더구나 사람들로 붐비는 도시 속에 지어지는 건물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건축은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하는 개인적인 작업이라기보다는 사회를 상대로, 또한 사회의 도움을 받아가며 진행되는 작업이다. 그리고 완성된 건축물은 모두에게 노출된다. 전시장을 찾아야 감상할 수 있는 미술품과 만천하에 드러나 있는 건축물은 이런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우리 사회가 변화하면서 건축이 갖는 이러한 특성이 더욱 더 강조되고 있다. 오늘날의 건축가들은 각종 언론의 관심의 대상이 되며, 건축가들의 의견은 종종 다른 분야에서도 귀를 기울인다.


2. 건축에는 많은 책임이 따른다

한번 지어진 건물은 적어도 수 십 년 이상의 세월을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존재는 현실의 일부가 되며 끊임없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건물은 일단 지어지면 쉽게 부수기도 어렵다. 그 만큼 공을 들이고 신중하게 지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는 건축설계와 관련된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건축사’라고 하는 것이 그것인데 학교를 마치고 몇 년간 실무 경험을 쌓아야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지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각종 고시나 의사 자격증 보다 더 얻기 어려운 자격증이기도 하다. 이 건축사 제도는 현재 갈수록 그 기준이 더 강화되는 추세이며, 따라서 앞으로 건축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일단 이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모교에서는 얼마 전부터 건축가가 되려는 학생들을 위해 건축학과 내에 건축공학과 구별되는 별도의 5년제 건축학 전공과정을 신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조만간 건축학과는 건축학부로 격상될 예정이기도 하다.         


3. 건축가는 종합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건축가의 전문분야는 물론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어떤 특정 분야만을 파고드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건축물을 제대로 설계하기 위해서 건축가는 방대한 지식과 경험의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건축가는 부분과 전체의 유기적인 연관관계를 중요시하며, 상황을 종합적으로 읽고 판단하고자 노력한다. 따라서 적어도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에 있어서 건축가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나 야전군 사령관과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된다.  


4. 건축은 창작이다

결과물을 미리 알고 만드는 것을 제작이라고 한다면 건축설계는 절대로 제작이 아니다. 설계란 움직이는 표적을 맞추는 것과 같아서 항상 미지의 변수들을 상대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설계가 진행되면서 어렴풋했던 건축물의 실체가 점차로 드러나는 과정은 참으로 신비롭고 소중한 것이다. 이 창작의 과정은 그야말로 전인간적인 노력과 헌신을 요구한다. 절대로 즉흥적인 영감에 의해, 혹은 반대로 예측 가능한 일련의 기계적인 단순 반복 작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건축의 가치에 대해 뒤늦게나마 눈을 떠가는 과정에 있으며, 따라서 앞으로의 건축가들에게는 더욱 더 도전적이고 매력적인 환경이 제공될 것이다.


5. 건축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건축도 시작되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고대의 건축물들은 인간의 능력에 대한 문명적 기념비와도 같다. 음악, 미술, 문학 등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건축이 상당히 조숙했던 분야가 아닌가 하는 느낌도 갖게 된다. 반면 건축은 그만큼 역사의 관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도 하다. 최첨단 정보 통신 시대인 오늘날에도 많은 건축물들은 지난 간 시대의 스타일에 따라 설계되곤 한다. 사람들은 종종 과거에 대한 향수와 현재의 절실한 필요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축가들은 자기가 속한 시대를 잘 읽고 거기서 어떤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건축가는 끊임없이 책을 읽고 사람들과 토론하며 많은 여행을 해야 한다. 건축가는 시대를 먹고 사는 직업인 것이다.


6. ‘poeta armata’

이탈리아어로 이것은 ‘무장한 시인’이라는 뜻이다. 건축가가 건물을 설계해서 이를 현실세계 속에 구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건축가는 세상을 설득해야 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하며, 일정, 예산, 법률 등 세속의 문제들로부터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건축가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무장을 갖추고 이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 목적이 결코 파괴적인 것에 있지 않으며, 건축가는 그 과정을 통해 보람이라는 열매를 획득한다. 건축가는 시인이되 결코 유약한 시인은 아닌 것이다.


  나는 현재 내 이름으로 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직원은 많지 않지만 원래 전문직종이 그리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하여간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일종의 중소기업체 사장인 셈이다. 직원들은 나를 통해 자기의 미래를 보며, 나는 일단 좋은 리더가 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지금은 모교에 출강하고 있으나 다른 학교에서 가르친 경험도 있다. 전문적인 교육자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나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의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며, 또 그들로부터 자극을 받는다.

  업무의 내용으로 보면 나는 주로 중소규모의 건물들을 수준 높게 설계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으며, 그 동안 주택, 기업체 사옥, 병원 등을 설계해 왔다. 최근에는 출판사와 관련된 건물들을 연속해서 설계하고 있기도 하다. 공사가 시작되면 정기적으로 현장을 방문하여 그 진행상황을 살피는 것도 내가 하는 중요한 업무의 하나이다. 내가 설계한 건물들은 건축 관련 전문지에 자주 소개되며 일간지에 실리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사회로부터 어느 정도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 결과 이제 모르던 분들로부터 설계 의뢰를 받는 경우도 늘어가고 있다. 나는 한 편 글을 많이 쓴다. 이것은 사회에 대한 나의 발언이며 또 남들과 서로 생각을 나누기 위함이다. 건축가로서 나는 이러한 활동이 결코 분리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건축이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나는 나이를 먹어도 내가 직장에서 퇴출되거나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인간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은 경험이 필요한 직업이며 연륜이 그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나 건축가의 삶이 갖는 장점의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나는 자유인이며, 건축은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고마운 나의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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