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기초과학을 튼튼히 하려면

 

나는 베토벤 교향곡 3번 4악장을 좋아한다. 특히 저음으로 깔리는 베이스의 받쳐주는 소리에 집중하면 멜로디를 따라갈 때보다 곡이 훨씬 더 입체적이고 웅장하게 들린다. 베이스는 바이올린처럼 각광을 받지는 못하지만 곡 전체를 받쳐준다는 면에서 어느 악기 못지 않게 중요하다.
        건물에도 기초가 중요하고 오케스트라에서 베이스를 빼놓을 수 없듯이 국가나 사회가 제대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튼튼하게 받쳐주는 기초가 필수적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인문학적 바탕이 전무한 상태에서 큰돈을 벌면 우리 사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병폐가 대번에 나타나게 마련이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하는 즐거움을 맛보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시간을 주체할 줄 모르게 된다. 이웃과 함께 살아가고 봉사하고 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튼튼한 기초가 아쉽다.
        과학기술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찬란한 문화에도 불구하고 천년 가까운 대학 전통을 가진 서구에 비해 근대 과학의 출발이 뒤늦어진 우리는 서두르기 십상이다. 서두른 덕분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급하다고 바늘에 실을 매어 쓸 수 없듯이 기본을 건너뛰다 보면 곧 한계에 부닥치게 마련이다. 상대가 강한 월드컵에서는 테크닉에 앞서 기본 체력이 중요하듯이 21세기 무한 경쟁 시대에서 과학기술의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초를 튼튼하게 다져야한다. 최근 서울대의 발전 방향에 대해 자문한 Blue Ribbon Panel은 학부에서는 폭넓은 기초 교육을 시킬 것을 제안하고 있다. 역시 기초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요즘은 IT, NT, BT, ET 등등해서 기초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테크놀로지에 연관을 짓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분위기가 팽배해 가고 있다. 실은 이것은 미국을 위시한 과학기술 선진국에서도 이미 진행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

 간과해서 안 될 것은 그들은 이미 수백 년의 전통을 통해서 튼튼한 기초를 구축해 놓고 있을 뿐 아니라,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도 상당한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오랜 기초 연구의 전통을 통해 기본적인 연구 인력의 확보가 되어 있으면 누가 뭐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초 연구에 몰두하는 일정수가 있게 마련이다. 최근에 읽은 생명의 느낌 의 주인공 바바라 맥클린톡 같이 40년을 인정을 받건 못 받건, 직장에 위협을 받아가며 한 연구에 매진하는 사람 말이다. 맥클린톡은 현미경과 옥수수 밭만을 가지고 평생 옥수수 유전자 연구에 매달렸다. 그리고 기존 상식과는 달리 유전자가 이리 저리 옮겨다닌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같이 기초 연구의 인프라가 부족하고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몇몇 인기 분야에 인력이 몰린다면 집중의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기초의 취약화라는 심각한 문제가 따를 것이 우려된다.
        내가 종사하는 화학의 예를 들어보자. 화학은 NT, BT, ET에 핵심적인 기초를 제공하는 기초과학 분야이다. 나노미터는 원자 수십, 수백 개를 쌓아놓은 길이인 만큼 화학 결합과 화합물의 합성을 다루는 화학이 나노과학기술의 핵심적인 기반을 제공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모든 생명 현상은 화학이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유전자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DNA라는 화학물질로 구체화되면서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성립되고, 나아가서 DNA의 화학적 구조가 밝혀짐에 따라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유전공학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BT를 통해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의약품, 식품 등이 모두 화합물이고 BT에서 사용하는 조작, 분석 등이 모두 화학의 원리를 사용하기 때문에 화학이 지속적으로 BT의 기본이 될 것이 틀림없다. 환경오염 물질의 대부분이 화학물질이라면 ET에서도 화학이 문제 해결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튼튼한 화학의 기초를 가지고 NT, B

T, ET에 도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기초과학 분야도 마찬가지다. 수학에 강한 인도가 IT에도 강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IT가 발전하려면 수학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NT가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다수의 튼튼한 기초를 쌓은 우수한 물리학도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중고등학교에서 이과 반 학생 수와 이공계 대학 지원자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은 국가의 장래를 위해 심각한 문제이다. 그렇다고 어려운 수학, 과학 공부를 기피하는 학생들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편한 것을 찾는 것은 인간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기초과학을 하는 매력을 보여 주고 본인이 선택하게 해야 한다.
        사람이 힘든 일을 하는 데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 번 째는 생존이 달린 경우인데 어려운 공부를 하지 않고도 쉽게 사는 사람이 많이 있으니 살기 위해 어려운 공부를 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두 번 째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헌신하듯 보람을 느끼는 경우이다. 그러나 국가의 장래를 위해 어려운 공부를 하라는 주문이 요즘 젊은이들에게 통할 리 없다. 세 번 째는 누가 뭐래도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경우이다. 다시 말해서 재미가 있어서 하는 것이다. 재미가 붙으면 돈은 이차적이 된다. 사회를 위한 기여는 저절로 따라 온다. 앞서 말한 맥클린톡도 복잡한 유전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에서 다른 것과는 비할 수 없는 재미를 느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과학에 재미를 느껴서 평생 즐겁게 과학에 종사하면서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게 할 것인가 이다. 내 생각에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은 중고등학교 과학 교과서를 대폭 바꾸는 일이다. 지금처럼 교육과정이 바뀔 때마다 내용의 획기적인 변화가 없이 이리저리 짜깁기 식으로 해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수준별로 가르쳐도 가르치는 내용 자체가 딱딱하고

재미없으면 별 의미가 없다. 그런데 과학의 내용은 정말 재미가 있는 것일까? 내 답은 포르티시모로 그렇다 이다. 양자역학을 몰랐던 뉴턴에게도, DNA를 몰랐던 다윈에게도 과학은 너무 재미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주의 기원부터 생명의 비밀까지 자연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대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학의 즐거움을 쉬운 말로 다음 세대에게 풀어 설명하고 동참하기를 권유하는 것이다. 혼자 가기에는 아까운 길이니까.
        물론 어려운 과학의 길이 사회에 필요하다면 평생 안정되게 과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에 획기적인 재외 과학자 유치 정책이 큰 성과를 거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과학을 하는 일이 인정받고 대접받는 사회가 되어서 win-win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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