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진정한 실습

 

김 국 호 Bureau Veritas Korea 사장

 

              서울대 조선항공학과 석사 (′69)

         코리아타코마 조선소 연구개발부장 (′75~′80)

대우조선 설계본부장, 영업본부장, 생산본부장(′81~′98)

대우조선 부사장으로 퇴임(′98)

Bureau Veritas Korea 사장(′98~ 현)

 

 

1967년, 그러니까 내가 대학 3학년 때다. 당시에는 조선소다운 조선소라고는 대한조선공사(현재 한진중공업의 전신) 하나뿐이었다. 과 주임 교수님의 정성어린 배려로 여름 방학 기간 동안 조선소에서 실습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대한조선학회를 주축으로 표준선 설계 사업이 의욕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마침 조선공사에서 당시 최대 크기의 6,000톤급 표준형 화물선이 건조되고 있던 참이라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실습 기회였다. 출발 전 교수님은 조선공사의 어려운 상황을 설명해 주시며 선배들에게 민폐 끼치지 말고 열심히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오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서울 거주하는 친구들에게는 사실 서울 부산간 이동 경비만 해도 상당히 부담이 되는 때였다. 게다가 이상스럽게도 우리 과 친구들은 왜 들 그리도 하나같이 못 사는지 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력으로 스스로의 문제를 다 해결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실습을 하겠다고 일단 부산으로 내려온 우리들은 당시 부산에서 거주하고 있던 필자의 집에 여장을 풀고 우선 조선공사를 방문하여 회사 간부들께 인사를 드렸다. 사실 말이지 회사는 무지 바쁜데 실습생들이 내려오면 걸리적 거리기나 하지 회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도움은커녕 바쁜 사람들 시간이나 빼앗으니 회사에서는 환영할 리 만무하다. 회사에 근무하시는 선배님들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렇지 않아도 박봉에 시달리며 겨우 생활을 꾸려나가는 처지인데, 후배라고 실습차 내려온 것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그래도 일단 회사에 근무하시던 여러 선배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내일부터 실습이 시작됨을 보고하였다.

해마다 찾아오는 후배들 이었지만 그래도 선배의 위신이 있는지라 당시 엄청난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십시일반(十匙一飯) 걷은 금일봉을 주시며 얼마 안되지만 실습하는 기간 동안 숙박비에 보태어 쓰라고 하신다. 그 어렵게 만들어 주신 봉투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즉시 구수회담을 갖고 색다른 실습을 하기로 만장일치 합의를 한다. 조선소 실습도 좋지만 배를 설계하려면 바다를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우리는 선배들이 모아 주신 금일봉을 받아 들고는 다음날부터 송정 해수욕장에 방을 얻어 바다를 좀더 확실하게 이해하는 진정한 실습을 시작했다. 형편이 넉넉치 못하였으므로 집에서 석유곤로와 부엌용 가재도구 일부를 들고 가서 당번제로 조리와 설거지를 책임지며 여름 휴가를 만끽 했는데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 바다를 확실하게 이해하는 데는 이 이상 더 좋은 실습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는 우선 해변가를 한바퀴 휘 둘러보며 혹시 밤사이에 새로운 팀이 도착하지는 않았는지 간단한 호구조사를 마치고 나서 식사당번이 준비한 불은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는 몇 사람은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고 몇 사람은 방안에서 기루다(일종의 브리지 게임)를 즐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해변가는 복잡해지고 볼거리가 늘어나면 다시 바닷가로 나와서 바다와 해변을 연구한다.

뭐 대충 이렇게 해변가에서 실습에 열중하고 있을 즈음 회사에서는 실습생들이 첫날부터 나타나지 않자 학교에 연락을 하고 온통 난리 법석이 났고, 특히 학교 선배님들은 학교에 연락을 취해서 어찌된 영문인지 따지고 항의를 하는 소동이 벌어졌다는데 우리는 느긋하게 남해안의 바다 상황과 해변가의 현황을 연구하며 친목을 다지는데 여념이 없었으니

송정 해수욕장에서 열흘 정도 머물며 이렇게 부단한 연구와 충실한 바다실습을 한 덕분에 인어를 능가하는 정말로 멋진 노란 수영복의 아가씨를 만나게 되었고, 이 운명적인 만남은 결국 우리 중의 하나와 결혼으로 연결되어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보람 있는 현장 실습이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어찌 감히 그 깐 조선소 실습의 효과를 여기에 비할 수 있단 말인가

 

즐거운 실습도 끝나고 나름대로의 방학을 정리한 뒤 우리는 다시 서울로

개학 직후 첫 시간에 나는 변명의 여지조차 없이 확실한 주동자로 몰려 과 주임교수로부터 선량한 친구를 선동한 죄로 타 대학으로 편입하라는 힐책을 받았으며, 2학기에는 개인적으로 다른 과목의 학점도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조선공사에 근무하는 선배들은 다시는 후배들 실습 오더라도 본 척도 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 후에도 별 문제 없이 실습은 계속되었고 예전과 다름없이 박봉을 털어서 막걸리도 사주시고 여비도 보태주셨다.

 

선박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로 생산할 수가 없다. 우선 스케일 면에서 보더라도 중간 크기 정도의 유조선인 수에즈막스(Suezmax)급만 해도 세워 놓으면 63빌딩보다도 크다. 이렇게 스케일이 클 뿐더러 이에 연관된 크고 작은 기술 또한 분야가 넓고 다양해서 특정한 사람 혼자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고가의 제품을 생산하려면 국제금융의 이용 방법이라든지 외국 해운회사와의 협력 등 국제적인 스케일로 접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의 나는 그리 대범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심한 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조선공학을 택한 덕분에 스케일이 넘치는 조선소에 근무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능력을 계발(啓發)할 수 있었다. 기술부서 근무 시절에는 세계 각처에서 몰려오는 우수한 기술자들과 어깨를 맞대고 기술 협의를 하며 실력을 배양했고, 영업부서 근무 시절에는 세계 각처를 돌아다니며 한국의 조선능력을 홍보하고 회사를 홍보하며 배짱을 키웠고, 생산부서 근무 시절에는 수천명의 회사 직원들과 동거동락하며 우수한 품질의 선박 생산을 위해 노심초사했다. 이렇듯 스케일이 크면서도 국제적인 감각을 필요로 하는 산업은 조선분야가 단연코 으뜸이다.

 

조선소의 부사장이 되어 회사를 대표하는 위치에 올 때까지 나는 조선공학을 택한 것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조선소를 떠난 지금도 한국의 조선업을 세계1위의 자리에 굳게 자리매김한 훌륭한 후배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더 많은 인재들이 조선공학을 선택해서 더욱 더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의 조선산업이 굳건히 세계1위를 지킬 수 있기를 기원한다.

조선 산업은 마치 바다와도 같은 여러 분야의 전문지식이 어우러져서 화합을 이루어야만 가능하다. 결국 이러한 화합의 근본은 인성이며 이해며 조화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인재들이 자신을 성장시키고 세계를 무대로 날개를 펼 수 있는 가능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진정한 실습을 경험한 우리 동기들은 졸업 후 조선분야 각계에서 나름대로의 영역을 잘 개척하고 일구어 내는 개척자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수는 얼마 안되면서도 학계, 연구계 그리고 조선소의 주요 책임자를 두루 섭렵하며 각각 다른 분야에서도 서로 잘 협조하는 우의를 과시했는데 그러다 보니 은사님들 역시 제일 인정하는 졸업생 집단이 되어 있었다. 실은 아직도 몇 사람은 중요한 조선분야에서 대들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대학 시절 조선소에 내려가 공사 현장을 둘러 보며 얻을 수 있는 기술습득도 좋은 실습이라고 평할 수 있겠으나, 이러한 기회를 십분 이용해서 동기생들 간의 인간적인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하고 바다와 더욱 친숙해 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서 두고두고 기억을 되살리며 사회 각처에서 더욱 더 열심히 협조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 알고 보면 진정한 실습의 효과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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