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봄날은 온다. (이미정)

2004.07.02 15:03

eunju96 조회 수:4583

 봄날은 온다.

 

                                                                  이 미 정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재료공학부 57회졸업)

              


 “제 57 회 학위수여식” 어느새 4년을 지나다닌 정문에 걸린 현수막이 졸업이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벌써..’, ‘어느새...’ 졸업이라는 단어와 늘 따라다녀 너무도 식상한 감탄사이지만, 급커브를 틀며 정문을 들어서는 셔틀버스의 손잡이에 익숙하게 힘을 주며 쏠리는 몸을 지탱하면서 나도 모르게 입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학생활을 돌아보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리움과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이다. 무엇이 좋은지도 모르면서 마냥 좋고 신나던 새내기 시절, 대학은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엄청난 숙제와 퀴즈들, 밤이 깊어 지하철이 끊기도록 끝날 줄 모르던 실험... 대부분의 공대생들의 대학 생활은 비슷한 패턴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거기에 동아리, 친구, 연인 등등 각자 자신만의 드레싱을 더해 고유한 대학생활의 추억을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대학생활 동안의 가장 큰 행운이었다. 늘 부족하고 모자란 나를 이끌어주던 친구들과 선배, 후배 그리고 교수님들의 진실한 목소리와 따뜻한 눈빛은 대학시절의 기억을 빛나게 해 줄 것이다. 

 물론 그만큼의 아쉬움이 있다. 아무 계획 없이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볼걸, 스포츠댄스를 좀 더 본격적으로 배워볼걸, 터무니없는 객기도 부려볼걸... 무엇보다도 새로운 것들에 좀 더 도전적이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이 남는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에 왔지만, 때로는 비틀거리고 때로는 부끄러운 날들도 단지 후회로만 남을 낭비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랑스럽진 않을지 모르지만 내 두 발로 힘껏 서 있는 오늘의 나를 만들어가는 소중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얼음이 녹으면....?”

 “..... 물이 되지...”

현관을 들어서며 다녀왔습니다 하는 내게 잘 다녀왔냐는 말 대신 엄마가 불쑥 던진 질문에 나 역시 아무생각 없이 튀어나온 대답이었다. 엄마는 빙긋이 웃으시며 마치 마법을 부리듯이 둘째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봄이 온단다.”

 “에이~ 모야..썰렁해, 엄마” 라며 피식 웃고 말았지만, 다음 순간 무언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얼음이 녹는다] = [물이 된다]. 마치 수학공식처럼 머리 속에 입력되어 있는 알고리즘이다. 아무런 의심없이 input을 넣고 중앙처리장치를 거쳐 output을 내놓은 내 자신에 흠칫 놀랐다. 아마 8bit 쯤 되는 것 같다.

 16년이라는 시간동안 누차 그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창의적, 통합적 사고는 온데간데없고 초등학교 시절 자연시간에 번쩍 손을 들고 말했음직한 대답을 그대로 되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정답을 말하려는 급급한 내 모습이 슬며시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막상 졸업을 앞둔 나는 또다시 있지도 않은 정답을 찾으려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졸업을 하면....?”

 “........... ”

 여기에 대한 졸업생들의 대답은 각자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취직을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대학원, 또 다른 누군가는 유학을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문제는 앞의 문제처럼 당연한 정답이라는 듯이 불쑥 튀어나오는 대답은 없을 것이다. 어떤 대답이 나오던지 그 목소리는 과연 정답일까, 혹은 틀렸더라도 부분점수가 있을까 하는 불안한 떨림일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님, 선생님, 선배... 인생이라는 길의 선행자들이 나에게 빙긋이 웃으며 걸어줄 마법의 주문은 무엇일까?

 졸업을 하며, 이제 막 낯선 곳의 모퉁이를 돌아서려는 불안한 마음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냥 좋을 때인 고등학교 시절이 당시에는 대학으로의 어둡고 긴 터널처럼 느껴졌다면 다시 되돌리고 싶은 대학시절도 아무런 길도 나있지 않은 사막처럼 느껴진 때가 있었다. 졸업가운을 벗는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망망대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을 하며, 과연 무언가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아간 것인지... 대부분의 졸업생들처럼 나 역시 이제 막 낯선 곳의 모퉁이를 돌아서려는 불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돌려 생각해보면 이렇게 불안정한 것은 내가 high energy state 이기 때문이 아닐까. 졸업을 등뒤에 놓고 새로운 시작을 해야하는 이 불안감과 중압감은 앞으로 내게 열려있는 수많은 날들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얼음이 녹으면 얼음자체는 물이 되어 형체를 잃어버리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스스로 시야를 가두고 눈앞의 현상에만 집착해서 정작 중요한 사실, 얼음이 녹아 따뜻한 봄날이 오고 있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던 내게 엄마의 말은 마치 주문과 같이 귓가를 맴돈다.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 우리의 부모님, 선생님, 선배... 인생이라는 길의 선행자들이 우리에게 빙긋이 웃으며 걸어주고 싶은 주문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요 며칠 날씨가 따뜻하더니 다시 기온이 뚝 떨어진다고 뉴스의 일기예보에서 소란스럽게 떠든다. 꽃샘추위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미 3월, 설사 한 겨울의 추위가 다시 찾아온다 해도, 이제는 견딜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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