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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대 이야기

생명공학 이야기

2004.11.11 07:49

lee496 조회 수:6466

 

생명공학 이야기


한지숙 서울대학교 응용화학부 교수


 


들어가는 말


연구실에 앉아 있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기분 좋게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 관악산이 있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이젠 창 밖 관악산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을 찬찬히 바라 볼 수 있을 만큼의 마음의 여유도 생겼지만, 공과대학 교수로서의 내 모습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듯 하다. 오랜 시간 나의 학문과 사고를 성장시킨 곳은 자연과학대였고 공대와의 인연이라곤 공대 식당을 몇 번 이용했던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응용화학부 교수 공채 인터뷰를 앞두고 어느 중국식당에 들렀었다. 미국의 중국 식당에서는 식사 후 fortune cookie 라고 하는 운세가 적힌 종이쪽지가 들어있는 과자를 주는데, 그날 내가 집은 과자에는 다음의 글이 적혀있었다: You will be called to fill a position of high honor and responsibility. 실재로 많은 책임이 뒤따르는 교수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으니 그 예언은 적중한 셈이다. 살다 보면 가끔 이러한 유쾌한 우연의 일치를 경험할 때가 있다.  이 에피소드는 나의 교수 임용이 하늘의 뜻이었다고 미화하는데 오용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많아 봤자 백 개 남짓 되는 쪽지 중 하나가 내 손에 걸린 것이니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한 일이었다. 과학사속에 등장하는 우연에 의한 역사적 발견들 역시 그 발견들과 발견에 대한 해석을 가능하게 했던 당시의 축적된 지식과 기술, 그리고 시대적 요구가 그 밑거름이 된 것이었기에, 그저 단순한 우연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들어 공학의 다양한 분야에 생물학을 응용하려는 노력이 확산되면서 공대에서도 생명공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BT (Biotechnology)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생명공학은 인간 삶의 향상을 위해 생물체를 이용하는 학문 또는 기술을 총칭한다. 생명공학은 기초 생명과학의 발달을 기반으로 탄생했지만, 기초 생명과학 지식의 공학 또는 산업에로의 전환이 가속화 되면서 생명과학과 생명공학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 지고 있다. 자연대와 의대 소속의 기초 연구실에서 생명과학을 연구한 내가 공대에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된 배경에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생명공학의 역사와 전망, 그리고 한국 생명공학의 현황 등을 간단히 살펴봄으로써 생명공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돕고, 아울러 생명공학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생명과학에서 생명공학으로


Biotechnology라는 말이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1919년의 일이나 고전적 형태의 생명공학의 역사는 기원전 6000~2000년 무렵 이집트, 아랍 등지에서 발효를 이용해 빵, 맥주, 와인, 치즈 등을 만들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그러나 1800년대 중반 Luis Pasteur에 의해 발효가 효모 등의 미생물에 의한 현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발효기술은 과학적인 원리가 아닌 경험에 의존하여 발달 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생명공학은 현재까지도 발효와 효소 기술을 이용한 식품 및 효소의 개발 등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고, 동식물 수정란 이식 기술을 이용한 육종 개발 등도 전통적인 생명공학의 한 분야로 분류된다.

현대적 의미의 생명공학을 가능하게 한 것은 1930-60년대 생명현상을 분자수준에서 설명하려는 분자 생물학의 발달이라 할 수 있다. 1857년 오스트리아 수도사인 Gregor Medel의 완두콩 실험을 통해 유전 현상이 세상에 처음 알려졌지만, 유전 물질의 본체가 DNA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그 후 100녀 가까이 흐른 1952년, Alfred Hershey와 Martha Chase의 T2 박테리오파아지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서이다. 1953년 James Watson 과 Francis Crick에 의해 DNA 구조가 규명된 후, 유전자로부터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생명현상의 기본 원리가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 하였다. 1973년 Stanley Cohen 과 Herbert Boyer에 의해 개발된 유전자 재조합기술 (Recombinant DNA technology)은 유전자의 재조합을 통해 특정 유전자의 발현 조절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유용한 단백질의 대량 생산뿐 아니라 유전자 변형 생물체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유전공학 기술은 세포융합기술, 단백질 생산기술 등과 함께upstream (기초) 기술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발효, 세포배양, 분리정제기술 등의downstream기술과 더불어 생명공학의 발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2003년 4월 15일, 인간 유전체 염기 서열 결정이 완료되었다는 발표는 post-genome 연구 시대로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인간을 비롯하여 여러 미생물, 식물, 동물의 유전체 서열의 해독이 속속 진행됨에 따라 유전체학 (Genomics), 단백질체학 (Proteomics) 등 생명현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omics 개념이 부각되었다. 1995년 Patrick Brown에 의해 개발된 DNA microarray 기술과, 그 뒤를 이어 활발히 개발되고 있는 단백질 칩, 화학물질 칩 등 은 유전자 발현, 단백질 간의 상호작용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현상을 빠른 시간에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빠른 속도로 축적되는 방대한 유전자 정보의 수집, 분석 및 활용을 위해 IT와의 접목이 어느 때 보다 요구되고 있다. 유전체 염기 서열에 관한 정보는 신약, 유전자 치료법, 질병 진단법 등의 개발을 통한 질병의 치료 및 식량 및 환경 문제의 해결에 있어 획기적인 돌파구가 되리라 기대되고 있는데, 유전체 염기서열로부터 밝혀진 각 유전자의 기능을 규명하고 유용한 유전자를 밝혀내는 후속 작업이 앞으로 진행 되어야 할 커다란 과제라 할 수 있다.

생명공학의 발달은 인류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 하였으나 생명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종교적 문제와 안정성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유전조작 식물의 식품으로써의 안정성 및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문제, 인간 복제 및 인간 배아 세포를 이용한 줄기세포 배양에 대한 윤리성의 문제 등은 과학자와 일반인 모두가 끝임 없이 고민하고 함께 그 법적, 윤리적 해결점을 모색해야 할 과제라 것이다.


생명공학에서 생물산업으로


1976년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개발자 중 한 사람인 Herbert Boyer와 기업가 Robert Swanson이 설립한 바이오텍 회사인 Genentech을 시초로 수많은 바이오텍 회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Genentech은 1982년 유전자 재조합을 통해 인간 인슐린을 최초로 생산했고, 기존의 제약회사들도 생명공학을 신약 개발에 사용하면서 생물공학을 이용해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생물산업의 개념이 등장하였다. 1993년 미국이 산업차원의 생물산업(Biotechnology Industry)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였으나 생물 산업은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산업분류가 이루어지지 못한 초기 단계이다. 그러나 생물산업은 급속한 성장이 예측되는 분야로 생명공학의 산업화가 가시화될 미래에는 생물산업 제품 및 서비스가 일상화되는 바이오 사회 (Biosociety) 의 도래가 전망되고 있다.

기초 생물학을 기반으로 탄생한 생명공학은 의학, 약학, 공학 등의 축적된 기술을 통해 그 발전이 가속화 되었고, 최근에는 IT, NT를 비롯한 다른 첨단 기술과의 융합이 요구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생명공학 기술로부터 발달한 생물산업은 의학, 농업, 환경 등 많은 영역에서 인간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생물 산업의 범위를 생물의약, 생물화학, 생물환경, 바이오 에너지 및 자원 (생물농업 포함), 바이오 식품, 생물전자, 생물공정 및 엔지니어링, 생물검정 및 생물정보 등 8개 분야로 분류하고 있다. 생물산업협회에서 BT관련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2002년 국내 생물산업의 시장규모는 약 1 조 4천 억 원 규모이고 이중 생물의약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 1). 생물의약분야의 강세는 현재 세계적인 추세이나 바이오 에너지 및 자원, 생물전자 부분의 높은 성장 가능성이 예측되고 있다.


한국 생명공학  정책


 핵심 기술의 보유가 나라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지식기반 경쟁사회에서, 거의 모든 선진국 들은 생명공학을 미래의 주도적인 기술분야에 포함시켜 적극 육성하고 있다. 국내 생명공학 발달은 주로 정부의 주도로 이루어져 왔다. 1983년 과학기술처 (현 과학기술부)에 의해 유전공학육성법이 제정된 이래, 1994년 과학기술부의 주관 하에 교육부, 농림부, 산업자원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등 7개 부처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생명공학육성기본계획안이 수립되었다. 2007년까지 14년간 3단계에 걸친 이 계획에 의해 정부 연구개발 투자의 꾸준한 증가가 있어왔고 현재 제 3단계 (2002-2007) 가 추진 중에 있다. 정부가 미래유망기술로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BT, IT (정보통신), ET (환경), ST (우주), CT (문화) 등 6T 분야 중에서도 BT에의 투자는 IT 분야와 더불어 9% 정도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 2). 그러나 정부의 2004년 생명공학 육성 예산인6,393 억 원은 미국 주요 바이오텍 회사의 일년 예산과 비슷한 수준이고, 민간의 투자도 상대적으로 미흡한 편이다. 우리나라의 생명공학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발전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생명공학분야의 지속적인 연구 기반 확충과 인력 양성, 경쟁력 있는 분야의 발굴 및 육성을 통해 충분히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고 도전해볼 만한 분야라 할 것 이다.      


맺음말


순수과학과 공학은 상당히 다른 학문이다. 순수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왜 이럴까? 를 생각하고 공학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될까? 를 고민한다. 그러나 생명공학의 역사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이 두 분야간의 교류는 상호 발전을 위해 필수 불가피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대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기술과 새로운 사고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 커다란 행운이라 여겨진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여전히 ‘공대 속의 자연대인 으로 남아 있을지, ‘자연대스러운 공대인 이 되어 있을지, 아니면 정말 자연스런 공대인 이 될 수 있을지는 내 스스로도 궁금한 일이다.


 

그림 1. 자료: 한국생물산업협회, 국내 생물산업 실태조사


 

그림 2. 자료: 2003년도 정부연구개발예산 현황 (KI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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