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고분자의 응용과 이해

2004.11.23 07:42

lee496 조회 수:6786

 

고분자의 응용과 이해

플라스틱 바가지에서 평판 디스플레이까지


응용화학부 이 종 찬 교수


1. 고분자란?


비닐, 고무, 플라스틱, 섬유, 접착제, 스펀지, 스티로폼, 유전자, 단백질, 염색체, 모피, 나무, 면 등등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들의 공통점은 이 물질들이 모두 고분자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화학관련 전공자들도 많은 경우 고분자의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할 정도로 고분자란 말은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말이다. 즉 고분자란 말 자체는 주로 학문적으로 사용하므로 생소할지 모르지만 위에서 열거한 단어들에서 보듯이 우리가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질을 의미한다. 고분자는 영어로는 폴리머(polymer)라고 하는데, 그 어원은 그리스어로 ‘많다’라는 의미를 가진 ‘poly 와 ‘부분’이라는 뜻의 ‘meros 에서 기원한다. 즉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 화합물이 고분자이며, 그렇지 않은 물질은 역시 흔히 사용하는 말은 아니지만 ‘저분자’인 것이다. 


1) 고분자는 기체가 될 수 없다.


 우리는 고분자와 저분자의 성질 차이를 예측할 수 있다. 저분자의 경우는 각각의 부분이 서로 떨어져 있어서 각각의 부분이 멀어지거나 접근하기 용이하므로 온도에 따라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체, 액체, 기체 상(狀)으로의 존재가 가능하다. 즉 낮은 온도에서는 3차원적인 규칙성을 갖는 고체인 결정구조를 보이며, 온도를 상승시킴에 따라 액체(녹는 온도) 및 기체(끓는 온도)로의 변환이 가능하다.


반면 고분자는 각각의 부분이 화학결합에 의해 연결되어 있어서 각 부분의 움직임은 이웃한 부분의 영향을 받는다. 때문에 각각의 움직임에 제약을 받고 자유롭지 못하여 낮은 온도에서는 결정 상으로 혹은 각 부분들의 배열이 불규칙적인 유리 상으로의 존재가 가능하고, 온도를 상승시키면 끈적끈적한 액체 상으로 변한다. 하지만 각각의 부분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온도를 더욱 상승시켜도 움직임이 자유로운 기체 상으로의 존재는 불가능하다. 즉 고분자 기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높은 온도(400℃ 이상)로 고분자를 가열한다면 이때 고분자 내의 각 부분을 연결한 화학결합이 끊어지게 되어 고분자의 고유한 성질을 잃게 된다.


모든 생명체의 기본 구조를 만드는 물질이 고분자인 이유는 고분자의 바로 이러한 성질 때문이다. 즉 인간의 피부 및 기본 근육의 구조체, 식물의 줄기, 동물의 가죽 및 털 등등 생체 고분자는 저온에서는 딱딱하다가 고온에서는 물러지고 그 이상의 온도에서는 분해되거나 혹은 타는 것이다. 만일 생물을 이루는 조직이 물과 같은 저분자로 이루어져 기체로 변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생물의 삶은 너무나도 불안해질 것이다.


2) 고분자는 긴 실처럼 꼬여 있다.


고분자가 저분자와 또 하나 다른 점은 고분자는 긴 실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충격을 가할 경우 저분자는 서로가 독립적이어서 쉽게 갈라질 수 있지만, 긴 실처럼 되어 있는 고분자는 서로 얽혀 있어서 이들을 분리하기란 쉽지 않다(그림 2). 그래서 저분자로 이루어진 물질은 쉽게 부서지는 성질이 있는 반면, 고분자로 이루어진 물질은 질기기 때문에 생체조직으로 사용하는 데 더 유리하다.


다만 금속은 저분자물질로서 견고한 조직을 이루지만 너무 무거워서 생체조직으로 이용되기는 불가능하다. 즉 고분자는 금속을 제외한 모든 저분자물질보다 질기고 기계적 강도가 뛰어나다. 하지만 고분자학문의 발달로 인하여 많은 합성고분자의 강도는 금속물질의 강도보다 우수하며, 이러한 고분자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라고 부른다.


3) 고분자 필름 사이에는 공기가 통과할 정도의 구멍이 존재한다.


저분자의 고체상태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구슬과 같은 원소의 3차원적인 규칙적 배열에 의해 그 패킹(packing)이 매우 효과적이다. 그래서 저분자 사이로는 기체 즉 공기가 통과할 수 없다. 반면 고분자는 스파게티 면처럼 엉성한 패킹을 이루므로 그 사이를 공기(산소, 질소, 탄산가스)가 통과할 수 있다.


실제로 알루미늄캔에 담긴 콜라의 맛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지만 플라스틱 병(PET)에 담긴 콜라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맛이 금방 변한다. 그 이유는 그림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탄산가스가 알루미늄같이 조밀한 패킹을 한 저분자 사이는 통과할 수 없지만 엉성한 고분자 사이는 잘 통과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바람이 빠져나가 풍선이 쪼그라드는 이유도 공기가 풍선을 이루는 고분자물질 사이를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질이 고분자의 단점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고분자 사이의 빈 공간의 크기 및 특성은 물질마다 다르고, 그래서 고분자마다 기체를 통과시킬 수 있는 투과도도 다르다. 이 때문에 어떤 고분자는 산소를,어떤 고분자는 질소를 잘 투과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면 공기 중의 산소를 선택적으로 분리해 낼 수 있어서 자동차 등의 엔진의 효율을 높이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고분자 사이에 빈 공간이 있다는 특징은 여러 물질 중 고분자만이 필터, 분리막 등의 멤브래인(membrane)으로 쓰일 수 있는 유일한 물질임을 말해 준다. 


2. 고분자의 역사 및 고분자 관련 노벨상 수상자


원시시대 최초의 도구가 나무임이 분명하므로 인류는 태초부터 고분자를 사용해 왔다고 할 수 있으며 가죽, 실크, 면, 양모도 자연에서 발견되어 그대로 사용되어 왔다. 단지 나무가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플라스틱 물질에 비해 기계적 물성이 많이 떨어지며 앞에서 언급한 성질과 다소 차이가 있는 이유는 나무가 순수하게 고분자로만 이루어진 물질이 아니라 여기에 여러 종류의 저분자물질이 섞여 있어서 그런 것이다. 나무에 포함된 저분자물질을 제거하고 남은 고분자를 다소 개질(改質)시킨 물질이 셀로판 필름, 레이온 섬유 등이며 이들의 성질은 일반 합성고분자의 성질과 동일하다.


한편 현대의 가공기법을 이용하여 고분자제품을 생산한 예는 중세시대(12세기) 유럽에서 동물의 뿔을 가공하여 램프와 창문 등을 제작한 것을 들 수 있다. 뿔은 125℃ 정도로 가열하면 부드러워지는데 이것을 누르고 펴서 얇고 평평한 판을 만든 것이다. 한편 남미의 아즈텍 문명에서는 고무나무에서 나온 액을 가열하고 굳힌 후 이 물질을 이용하여 방수복 혹은 게임용 공을 만들었으며, 유럽의 신대륙 개척 이후 이 기술은 유럽에 전달되었다. 1850년 이 천연고무 기술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 해저 케이블의 피복으로, 또 그 이후에는 골프공 껍질로도 이용되었다.


하지만 천연고무 자체는 약간만 가열해도 흐르기 시작하며, 0℃ 이하의 온도에서는 잘 깨지는 성질이 있어서 응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천연고무가 잘 깨지거나 흐르는 이유는 그 구성원소가 모두 탄화수소여서 고분자간의 인력이 작고 이 때문에 낮은 온도에서는 충격에 의해, 고온에서는 고분자의 움직임에 의해 각각 쉽게 분리되기 때문이다. 1839년 미국의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는 천연고무에 황을 첨가하여 기계적 강도를 강화시킨 고무 제작에 성공하였다. 그림 4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황이 고분자 사이를 연결시켜 인력이 약한 천연고무의 단점을 극복한 것이다. 굿이어는 이 물질을 타이어 재료로 이용하여 큰 부를 축적하고 현재의 굿이어사를 창업하였다.


하지만 굿이어는 왜 황이 천연고무의 성질을 개선했는지 모르고 세상을 떠났다. 사실 굿이어가 생존했을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고분자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 고분자의 구조며 성질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도 사람들은 순전히 경험에의존하여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여러 고분자를 합성하였다. 예를 들어 나무에서 추출할 수 있는 셀룰로즈(cellulose) 고분자를 이용하여 당구공, 레이온 섬유, 사진용 필름, 라커 등을 만들었고 페놀을 이용하여 페놀 포름알데히드(phenol-formaldehyde) 수지를 개발 전자제품의 하우징(과거 전화기의 검은색 케이스 등), 항공기 재료, 식기 등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경험에 의존한 고분자 개발에는 한계가 있었고, 본격적인 고분자의 발달은 고분자의 존재 확인과 고분자에 대한 학문적 연구의 시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합성고분자가 만들어지고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20세기초까지도 사람들은 아직 저분자물질이 연결된 고분자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였다. 즉 저분자물질들이 단지 모여서 형성된 콜로이드(colloid) 상이 앞에서 열거한 고분자의 성질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였을 뿐이다. 물론 여러 학자들이 고분자의 존재를 실험적․ 이론적으로 증명하고는 있었지만 그 당시 과학 수준에서는 이를 확인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스위스 취리히의 ETH에서 연구중이던 슈타우딩거(Staudinger)는 천연고무를 진공에서 끓여도 저분자물질이 생기거나 기체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또한 그는 천연물들을 이용하여 여러 합성고분자를 만들면서 고분자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연구 결과로 슈타우딩거는 1953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고분자 존재의 확인은 이후 고분자학문의 급속한 발전과 수많은 새로운 고분자합성의 계기가 되었다.


한편 미국의 뒤퐁(Dupont)사에서 연구중이던 캐로더스(Carothers)는 최근까지도 섬유 및 필름의 주원료로 쓰이고 있는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수지 개발에 성공하였고, 캐로더스 연구팀의 일원이었던 플로리(Flory)는 고분자의 물리화학적 특성 규명 연구 업적으로 1971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요즘 슈퍼마켓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비닐봉지는 독일의 치글러(Ziegler)와 이탈리아의 나타(Natta) 두 사람이 개발한 고분자중합 촉매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이전에는 석유정제 과정 중 많이 얻을 수 있는 에틸렌과 프로필렌은 왁스 상이나 앞에서 말한 천연고무처럼 흐르는 형태의 고분자로만 제조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촉매개발 성공으로 단단하며 질긴 고분자를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플라스틱 그릇, 장난감, 섬유 등이 이들의 촉매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러한 업적으로 치글러와 나타는 1963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였다.


초기 고분자 합성 및 개발은 주로 기존에 이용하던 천연고분자(목재 등등), 금속, 종이, 유리, 기타 무기물 재료(도자기 따위) 등을 대체하거나 혹은 이 물질들의 코팅제를 만들어내는 데 치중했었다. 예를 들어 흥부전에 나오는 박을 이용한 바가지는 모두 플라스틱 바가지로 대체되었고, 자동차 내․외장재가 금속에서 점차 플라스틱으로 바뀌어온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미국 GM사에서 개발한 ‘새턴’이라는 자동차는 차체까지도 100% 고분자를 이용하여 제작한 것이다.


반면 최근 고분자연구는 주로 새로운 기능을 함유한 고분자 개발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최근 고분자 관련 노벨상 수상자의 수상내역은 이를 더욱 실감나게 해준다. 1991년 프랑스의 드 젠느(De Gennes)는 액정과 고분자의 배열현상 규명과 그 이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는데, 그의 연구 결과는 현재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액정 디스플레이 개발에 크게 기여하였다.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 액정 디스플레이의 대부분의 부품이 고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2000년 노벨화학상은 미국의 히거(Heeger)와 맥다이어미드(MacDiarmid) 그리고 일본의 시라카와에게 돌아갔는데, 이들은 전기를 통하는 고분자 그리고 전기에 의해 빛을 발광하는 고분자를 개발하여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 동안 고분자는 절연체(전기가 통하지 않는 물질)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 고분자의 개발로 이제 고분자를 전기가 통하는 목적에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새로운 영역이 열려 그 응용성이 확장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특히 전기에 의해 빛이 발광되는 성질은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벽걸이 디스플레이나 텔레비전 개발과 크게 관련된다. 유기물 혹은 고분자는 전기에 의해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의 빛을 발광하는데, 이 고분자 각각을 아주 작은 픽셀에 넣고 전기장을 가하여 모든 색깔을 발하게 하는 방법으로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얇은 벽걸이형 텔레비전에는 이러한 발광성 고분자를 이용하는 방법, 액정 디스플레이 기법을 이용하는 방법, 그리고 플라즈마를 이용하는 방법 등이 채용되는데 이 모든 방법에서 고분자는 주요한 핵심부품으로 이용되고 있다.


아직 노벨상을 수상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급속히 발달하고 있는 고분자학문 영역으로 나노기술과 생명공학 분야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루려고 한다.


3. 고분자의 응용


1) 고분자가 금속, 유리, 기타 무기재료에 비해 가지는 장점


초기 인류는 동물가죽, 나무, 풀잎 등 천연고분자를 직접 생활에 사용하였으며 점차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양모, 목화, 실크, 동물의 뿔, 고무 등을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가공하여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였다. 19세기 이후 화학이 발달하고 20세기초 고분자의 존재가 학문적으로 확인된 후 합성고분자는 기존의 천연고분자는 물론 금속, 유리, 기타 무기물 재료까지 대체하였다. 고분자는 금속에 비해 가볍고 가공온도도 낮으며, 잘 만들어진 고분자는 금속보다도 기계적 강도가 우수하다. 유리에 비해서는 잘 부서지지 않고 가공온도가 낮으며, 많은 고분자의 경우 유리가 가지는 투명성을 지니고 있다. 도자기를 비롯한 무기물 재료에 비해서는 성형능력이 뛰어나고(즉 모양을 바꾸기 쉬우며), 외부 충격을 잘 견디고, 무게도 훨씬 가볍다.



고분자의 가공온도가 낮다는 것은 에너지 위기에 처해 있는 인류에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비용을 절감해야 하는 기업에게는 무척 유리한 것이다. 그림 5는 700mL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용기를 제작하는 데 드는 총 에너지 양을 보여주는데 여기에는 원료제작에 소요되는 에너지, 용기를 성형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림으로부터 우리는 석유에서 추출된 원료를 이용하여 저분자물질을 만들고 이를 화학반응시켜 고분자물질을 만들고 이 고분자물질을 이용하여 용기를 제작하는 데 드는 에너지가, 철광석에서 산화철을 캐내고 용광로에서 이를 녹여 강철을 만들고 이 강철을 이용하여 강철 통을 제작하는 데 드는 에너지보다 적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그림 6은 각 물질의 비중을 보여주는데 비중은 부피 분의 질량(질량/부피)이므로 비중이 작을수록 가벼운 것이다. 고분자물질의 무게는 나무 정도로 가벼우며, 특수 가공기법으로 만든 고분자물질인 스티로폼이나 스펀지는 나무보다도 훨씬 가벼움을 알 수 있다. 가볍다는 것은 곧 수송에 소요되는 에너지 절약으로 연결된다. 그림 7은 1톤의 음료수를 운반하는 데 드는 에너지 양을 보여주는데, 역시 가벼운 고분자물질 혹은 플라스틱 통에 담긴 음료수를 운반하는 데 가장 적은 양의 휘발유가 소모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 첨예하게 부각되고 있는 에너지 및 환경 문제와 깊이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비용 및 에너지적인 측면만이 고분자물질의 폭발적인 사용량 증가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그림 8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분자물질은 종류에 따라 여타 물질에 비해 기계적 강도가 우수할 수 있다. 물론 기계적 강도가 금속보다 우수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제조비용이 비싸서 사용이 제한적이지만 특수 목적을 위해서는 고비용의 고분자 제조가 필요할 때도 있다. 단적으로 항공우주 혹은 군사 목적에 사용되는 고분자라면 아무리 비싸더라도 다른 재료가 가지지 못하는 특성을 나타낼 경우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달 탐사시 사용되는 우주복용 고분자,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도록 제조된 스텔스기의 외장 고분자재료, 항공기 재료로 쓰이는 케플러 섬유, 잠수함 표면처리용 고분자 등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 고분자 제조 기술은 주로 미국 NASA와 공군연구소에서 개발되었는데, 최근 들어 첨단재료의 필요성 증가는 이러한 고분자물질의 대량생산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대량생산은 이들 고분자의 단가를 낮추고 있다. 





2) 고분자의 공해문제 및 이를 극복하는 방법


많은 사람들이 고분자는 공해물질이며 고분자 사용을 줄이는 것이 환경문제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긴 하지만 앞에서 말한 고분자의 장점 때문에 현 시점에서 고분자 사용을 줄이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생활의 향상과 더불어 고분자 사용은 더욱더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대개 고분자 용기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믿기 때문에 사용을 꺼리는데, 정확히 말해 고분자 자체는 안전하며 고분자물질의 식기 등을 사용할 경우에도 고분자 자체가 인체에 유해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고분자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 잘 제거되지 않았거나 고분자 가공시 첨가되는 화학약품들이 고분자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러한 경우에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고분자 제조 및 공정 조건을 바꾸어 인체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고분자를 생산해 내고 있으며, 이러한 제품은 시중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고분자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이것이 버려졌을 경우 썩지 않아 지구상에 영원히 공해물질로 남는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사실 과거 고분자 사용이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고분자의 안정적인 성질, 즉 변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나무는 썩고 금속은 부식하는 등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나 고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환경보존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요즈음 고분자의 공해 문제는 꼭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문제는 다음의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첫번째 방법은 생분해성 고분자를 이용하는 것이다. 일반 고분자가 썩지 않는 것과 달리 생분해성 고분자는 자연상태에서 서서히 분해가 가능한 고분자로서 이미 의학계에서 수술용 실 등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수술 봉합용 실의 경우 수술시에는 섬유의 역할을 하다가(수술 부분을 꿰매는 데 사용) 상처가 아물면서 서서히 인체로 녹아들어 자연스럽게 분해된다. 생분해성 고분자는 미생물이나 공기 중 수분에 의해 분해되는데, 이러한 고분자는 일반적인 화학적 합성방법을 이용하여 만들 수도 있고 혹은 생물체에 존재하는 고분자를 추출하거나 미생물을 이용하여 만들기도 한다. 어떤 미생물은 신진대사 과정 중 배출하는 물질에 고분자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고분자는 생물이 직접 합성한 것이기 때문에 자연에서 쉽게 분해된다.


이제까지 만들어진 생분해성 고분자는 일반 합성고분자에 비해 기계적 강도가 떨어지고 가격 또한 비싼 단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미생물을 이용해서 고분자를 만들 경우 가격이 일반 합성고분자보다 최소 7배 정도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용적인 측면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 생분해성 고분자를 사용하는 것은 불리하지만 환경을 중요시하는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의도적으로 생분해성 고분자를 사용하고 있다. 경제적 원리를 중시하는 미국에서는 생분해성 고분자에 대한 연구는 많이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대대적인 실용화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분자의 공해 문제를 해결하는 두번째 방법은 합성고분자를 생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을 만드는 것이다. 미생물은 고등동물에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세대가 짧아서 그 진화속도도 매우 빠르다.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의 진화에 수십만, 수백만 년이 소요된다면 미생물의 진화는 단 몇 시간, 길어도 며칠이면 끝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고등동물의 생체구조는 고도로 발달하여 조그마한 환경 변화에도 적응이 불가능한 데 반해서 미생물은 구조가 간단해서 아무리 극악한 환경에 처해지더라도 재빨리 변신하여 새로운 환경에 쉽게 적응한다. 예를 들어 화산 인근의 뜨거운 유황물 속에서도 미생물은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합성고분자가 생체조직과 구성성분이 동일한 유기물임에도 불구하고 생분해되지 않은 이유는, 합성고분자가 지구상에 존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약 100년 정도) 아직 미생물이 접촉하여 살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미생물을 다른 유기물 없이 합성고분자만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살게 한다면, 물론 대부분의 미생물은 죽겠지만 몇몇 미생물은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 ‘생물은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낸다’고 언급한 바와 같이 합성고분자를 이용하여 살아나가는 방법을 배울 것이다. 즉 유일한 에너지원인 합성고분자를 섭취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미생물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최근 연구 결과 이러한 미생물이 많이 발견되었으며 이들이 실제로 합성고분자를 분해시킨다는 사실이 보고되고 있다.



3) 생명공학에서 이용되는 고분자


인류의 생활이 윤택해지고 필수적인 의식주 문제가 점차 해결됨에 따라 모든 과학의 관심이 생명공학으로 몰리고 있다. 즉 인간을 건강하고 오래 살게 하기 위한 방법의 개발이 현대 및 미래 과학의 중심이 될 것이다. 생명과학에서 사용되는 많은 재료가 고분자재료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의료용 장비의 재료는 물론이고 인공장기, 예를 들어 인공심장, 치아, 혈관, 피부 등등의 재료는 대부분 고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인공장기 개발을 목표로 하는 새 생명공학 분야인 조직공학(Tissue Engineering)에서는 고분자 인공장기 이외에 직접 생체 각 장기의 줄기세포(stem cell)를 이용해 인공장기를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조직공학의 기본적인 기법을 보여준다. 손상된 귀를 복원하기 위하여 환자의 귀에서 조직을 조금 채취하고 이로부터 세포를 분리한 후 배양하여 귀 모양으로 만든 고분자에 이식한다. 그런 다음 이것을 환자의 잘라진 귀 부분에 붙이고 이를 성장시켜 귀를 회생시키는 것이다. 현재 이 방법으로 사람의 피부, 연골조직 등은 성공적으로 재생하고 있으며 심장, 혈관 등 다른 인공장기의 재생을 위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사, 생물학자, 고분자학자들간의 상호 협동연구가 필수적이다. 만일 이러한 시도가 성공한다면 심장병을 비롯 현존하는 여러 치명적인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것이다.


고분자를 이용한 질병치료의 방법으로 약물전달체계(drug delivery system)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약을 복용할 경우 약효는 그 약이 소화되어 배설될 때까지 지속되므로 연속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하루에 2~3회 복용해야 한다. 또 약 복용 초기에는 인체 내에 약의 농도가 너무 높아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야기될 수 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약효가 떨어진다. 그런데 약 성분이 포함된 고분자를 피부에 붙이거나(귀 뒤에 붙이는 멀미약 등) 인체 내에 부착한다면 위와 같은 단점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고분자 내의 약 성분은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빠져나오므로 약효가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그림 10 참조).


약물전달체계의 또 다른 예로 암세포 등 인체 내 비정상적인 곳에서만 약효를 나타내도록 만든 고분자를 들 수 있다. 고분자는 긴 사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사슬은 환경에 따라 길게 펼쳐져 있기도 하고 움츠러들어 있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암세포 주변의 화학적 환경은 정상세포 부분과 다르므로 우리가 정상세포에서는 움츠러들어 있다가 암세포 주변에서는 펼쳐지는 고분자를 이용한다면 고분자 내의 약 성분은 암세포 부분만 선택적으로 공격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항암제를 복용하여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적인 세포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4) 정보전자 고분자재료


이른바 미래 정보전자산업의 3대 핵심부품이라고 일컫는 반도체, 평판 디스플레이, 전지에서 고분자의 역할은 구조용 재료로써의 이용뿐 아니라(모든 전자제품의 케이스는 고분자이다) 정보전자의 핵심소재로서 그 필요성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그림 11은 현재 사용되고 있는 액정 디스플레이의 단면도인데 여기에 쓰이는 대부분의 부품이 고분자임을 알 수 있다.


액정 디스플레이의 원리를 간단히 나타낸 것이다. 우선 액정이 놓인 위, 아래 판에 전기를 끈 상태를 먼저 설명하면, 맨 아래 램프에서 나온 빛은 빛 진행의 직각방향으로 전기장을 갖는다(이것은 빛이 갖는 기본 성질이다). 이것은 고분자 편광판을 통과하면서 오직 한 방향의 전기장만을 갖게 된다. 이 빛은 꽈배기처럼 꼬인 액정을 유연하게 통과하고 맨 위의 편광판을 만나는데, 이때 빛의 전기장과 편광판의 방향이 같기 때문에 빛은 통과하게 된다. 만일 액정의 위, 아래 판에 전기를 가하면 액정은 전기적인 힘에 의하여 판에 직각으로 서게 된다. 그래서 이 경우 한 방향의 전기장을 가진 빛은 액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그대로 직진하여 위의 고분자 편광판을 만난다. 이때 전기장과 편광판의 방향이 직각을 이루기 때문에 빛은 통과하지 못하고 어두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한편 칼라 액정 디스플레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림 11에 나타난 바와 같이 고분자로 만든 칼라 필터가 필요하다. 칼라 필터는 고분자 등으로 만들어진 작은 픽셀 안에 각각 빨간색, 녹색, 파란색의 3가지 색소가 들어가도록 고안되어 있는 것으로 예를 들어 빨간색을 내기 위해서는 빨간 부분에만 빛을 통과시키고 흰색을 내기 위해서는 모든 색소 부분에 빛을 통과시킨다. 현재는 유리가 액정 디스플레이 앞뒤의 지지대 역할을 맡고 있지만, 이후 좀더 얇고 유연한 디스플레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단한 유리가 아닌 고분자물질의 사용이 유력하다.


한편 가끔 TV 방송의 선전이나 SF영화에서 보이는, 평소에는 접어서 보관하다가 필요하면 펴서 동영상이나 글자를 볼 수 있는 미래의 신문인 ‘종이 같은 디스플레이’(paper-like display)에 쓰일 수 있는 재료도 대부분 고분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디스플레이는 얇은 동시에 유연하며 접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리가 나기를 원한다면 현재 얇은 스피커로 이용하는 PVDF(PolyVinyliDene Fluoride)라는 고분자물질이 사용되어야 하며, 또 전기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얇은 고분자 리튬전지나 고분자 태양에너지 변환물질도 필요할 것이다.


고분자 리튬전지는 이미 실용화되었지만 아직 종이처럼 얇게 만들 수는 없다. 얇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리튬전지에 쓰이는 전해질(음극과 양극 사이에 놓여 두 극이 만나는 것을 방지해 줌과 동시에 리튬이온을 두 극 사이로 이동시킬 수 있는 물질)을 모두 고분자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 사용되는 고분자 리튬전지의 전해질에는 고분자와 액체 성분이 모두 포함되어 있어서 만일 전지가 파손될 경우 액체와 함께 리튬 물질이 새어나와 폭발할 위험이 있다(리튬은 공기 중 수분을 만나면 폭발한다).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전지를 상당히 두껍게 만들며, 그러한 이유로 형태도 사각형 모양을 벗어나기 어렵다. 이러한 전해질이 100% 고분자물질이라면 파손된다 해도 단지 고분자가 구부러지는 정도이므로 리튬이 새어나올 염려가 없고, 이러한 안전성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얇은 리튬전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리튬전지의 크기나 모양 때문에 많은 제약을 받는 핸드폰의 디자인은 100% 고분자 리튬전지가 사용된다면 아마 크게 변할 것이다. 지금도 전세계의 수많은 고분자학자들이 새로운 리튬전지용 고분자 개발에 여념이 없으며, 성공한다면 그 경제적 효용가치는 대단할 것이다.



리튬전지가 소형전자기기의 전기에너지 공급원이라면, 연료전지는 대규모 전력공급용으로 쓰일 수 있다. 연료전지의 기본구성은 리튬전지를 포함한 일반 전지와 마찬가지로 양극과 음극 그리고 두 극 사이의 전해질로 이루어져 있다. 리튬전지의 원리가 리튬이온이 양극 사이를 이동하면서 전기를 발생시키며(방전) 외부에서 전기를 가해 주면 리튬이온이 반대로 움직여서 충전되는 것인 데 반해, 연료전지는 전지 내의 산소와 수소의 전기화학반응에 의해 전기를 발생시키는 것이다(그림 13). 이때 산소는 공기 중에서 공급되며, 수소는 수소를 함유한 금속물질이나 알코올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다. 알코올로부터 수소를 얻기 위해서는 촉매를 이용해야 한다. 물론 수소가스 자체를 수소공급원으로 이용할 수도 있지만 수소는 폭발할 위험이 있으므로 이 방법은 많이 이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전기화학반응을 통하여 상당히 대용량의 전력을 발생시킬 수 있으며, 이때의 부산물은 단지 물이므로 공해문제가 전혀 없다.


만일 이것이 실용화된다면 예를 들어 한 가정의 모든 전기는 환경 및 공해 문제를 야기하는 발전소에서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집에 비치된 알코올을 연료로 하는 연료전지가 공급하게 될 것이다. 또한 연료전지를 이용하면 무공해 전기자동차의 개발이 가능하다. 실제 일본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에서는 아직 경제성은 떨어지지만 연료전지를 비치한 전기자동차를 이미 개발하였으며, 효율적인 연료전지가 개발되는 순간 오늘날 도시 공해의 주범인 가솔린 엔진을 모두 대체하고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만일 자동차의 동력원이 화석연료를 이용한 엔진에서 연료전지로 대체되고 가정의 냉난방이 모두 연료전지에서 나오는 전력을 이용하게 된다면, 그 사회적․산업적 영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현재 경제적인 연료전지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연료전지의 원료공급 방법(알코올을 분해하여 수소를 효과적으로 얻어야 한다), 전극문제 등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여기에서 사용되는 고분자 전해질의 성능이다. 연료전지에 사용될 고분자는 기계적 특성, 열적 안정성, 전기전도도 등이 아주 우수해야 하는데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고분자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현재 연료전지에 사용하고 있는 고분자 전해질은 미국 뒤퐁사에서 제조한 내피온(Nafion)이라는 불소계 고분자인데, 이것이 이러한 고분자 구비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지 못해서 연료전지의 실용화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보전자 재료의 총아 중 하나인 반도체 및 집적회로의 제작에서도 고분자재료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른바 반도체 내 미세한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는 금속선(회로망)을 형태를 만드는 공정에서 고분자 재료인 포토레지스트(photoresist)의 사용이 필수적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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