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

2004.09.15 02:00

lee496 조회 수:3423


 

정보통신 분야의 1인자 조정남 SK텔레콤 부회장

엔지니어의 근성으로 CDMA 상용화에 성공하다


나는 1941년 전주에서 아버지 조종택씨(1987년 작고)와 어머니 윤순임씨(2000년 6월 작고)사이에서 2남 3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6.25 전쟁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우리 집안도 역시 그다지 부유한 형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부하라는 채근 한 번 없이 1등을 놓치지 않으며 어머님의 가르침을 잘 따랐던 나는 언제나 어머님의 자랑이었다.

「남의 지탄받을 행동을 삼가고, 만인이 존경하는 지도자가 되라.」는 것이 유일한 어머니의 지침이요 판단기준이었다.

어머니의 지원으로 밖에서 나는 늘 잘 생기고 똑똑한 부잣집 아들로 보였다. 어머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가 어느 경우에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처신하며,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내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전주에서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자면 원불교 학생회 활동과 친구들과 어울려 기린봉, 고덕산을 타고, 우전면 개울가에 천렵하는 등 즐거운 추억이 가장 또렷이 떠오른다. 그런 나에게 SK그룹 고유의 경영기법인 SUPEX추구 정신과도 상통하는 일화가 있다.

고3 당시 나는 고1학생의 과외를 맡아 학교 앞에서 함께 하숙을 하고 있었다.

마침 그 하숙집에 빈방이 하나 났는데, 주변 친구들은 늘 1등하는 조정남 옆에서 조정남 하는 대로 따라 하면 1등은 아니더라도 성적은 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서로 하숙을 하겠다고 자청했다. 그러나 나와 함께 생활한 친구들은 한달 후 형편없이 떨어진 성적표를 내보이며 여전히 1등을 고수하고 있는 나에게 비결을 물었다. 그들이 본 내 모습이라고는 과외를 하거나 적당히 놀면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었으니…의아할 수 밖에…

나는 흔쾌히 친구들에게 비법을 전수해 주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SUPEX추구를 위한 일처리5단계의 한 과정인 KFS(Key Factor for Success)추출에 관련된 것이었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들으면, 시험에 나올만한 문제들이 보인다.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이 되는 것을 찾아 열심히 하라! 고 일러주며 예상문제를 정리해 주었었다.

그런데 그 문제들이 다음 시험에 반영되자 그 친구들의 성적이 부쩍 올랐고, 그 후로 한 동안 친구들은 나를 천재 조정남 이라 부르곤 했다.


학창시절을 보내며 누구나 한 번 쯤은 교사 의 꿈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중·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는 장래 희망을 오래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할 무렵, 그것은 달콤한 꿈일 뿐, 가난한 이웃의 의식주 해결을 위한 당장의 과제는 공대에 진학하여 산업 역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대학 졸업 후도 마찬가지. 당시 유행하던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 최초의 정유 공장을 가진 대한석유공사에 입사하였고 그 후 여러 번 미국 유학 포기는 일생 일대의 실수로 치부하게 된다. 그러나 그 첫 직장이 지금의 직장이고 SK와의 아름다운 인연의 첫 단추임에 더는 후회가 없다.

1966년 월급 만 팔천 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국내 정보통신의 초우량기업인 SK텔레콤의 사장이 되었다.

내가 직장인으로서 걸어온 길을 이 곳에 옮겨 본다. 조금 먼저 인생의 길을 걸은 선배로서 최고 경영자를 꿈꾸는 패기있는 우리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하나의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화학공학도였던 나는 지금의 SK㈜(舊유공)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 모습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항상 신이 나서 즐겁게 일하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열심히 일하고 그 일의 성과를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의욕을 불러 일으키곤 했다.

물론 나에게도 고비는 있었다. 82년 유공시절 태풍 셀마 에 밀려온 40만톤급 벌크 선박의 엥커가 울산 원유하역 해저 송유관을 절단하는 예상치 못했던 사고와 지난 96년 세계 처음으로 CDMA를 상용화하면서 세 번의 통화중단 사태가 발생했을 때 등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그것이었다. 또 유공시절, 회사의 경영권이 세 번이나 바뀌면서 주변의 많은 동료들이 회사를 떠날 때에는 나도 적잖이 고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오랜 시간동안 SK라는 한 우물을 고집할 수 있었던 것은 일꾼을 인정해주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고 SUPEX추구를 통해 스스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누구나 직장생활에 있어 가장 큰 고비는 어려운 상사를 만났을 때일 것이다. 나 역시 직장생활을 통해 모시기 어려운 세 분의 상사를 만났다. 두 번째 까지는 그런대로 잘 극복했으나 세 번째는 사표를 내고 싶은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그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이다. 내게 고통을 안겨 준 것이 그 당시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나 자신이 그 과정을 통해 강해지고 오히려 배운 것이 많으니 말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얻은 교훈은 오래 간직되기 마련이다.

나는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말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의 과오를 교훈으로 삼아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으니 주변의 모든 사람이 나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국내 정보통신 선도기업인 SK텔레콤 사장의 역할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비결을 묻는 사람이 많다. 내가 사장이 되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요인이 있다면 성공을 위한 핵심요소, 즉 KFS(Key Factor for Success)를 찾아내는 능력과 해당분야의 전문가를 알아보는 안목,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조화롭게 일할 수 있도록 조정해 주는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내가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겨 처음 맡은 일은 서비스 생산부문장 이었다. 흔히 말하는 화공쟁이가 이동통신의 정상을 지키면서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방식이라는 새로운 모험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켜야 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었으니 영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커다란 벽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유능한 네 명의 고급 기술인력과 함께 일할 수 있었고, 나는 그들의 기술력과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경험과 조직관리 능력을 조화시키는데 최선을 다했다. 또한 초기 시설 투자비 4백억원을 나에게 달라. 그러고 나면 CDMA의 성공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다 라고 말하는 나를 믿고 선뜻 투자를 결정해 주신 손길승 회장님의 나에 대한 신뢰도 큰 힘이 되었다.

우리는 흔히 어린시절 유능했던 사람이 나중에 평범한 사람으로 주저앉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이는 모든 것을 잘하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어느 하나도 잘 할 수 없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나는 다른 사람의 장점을 흉내내기 보다는 나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나만의 역할을 찾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SK텔레콤의 경우, 회사의 비전 제시에 탁월한 회장님이 계시고 마케팅과 기술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있기 때문에 나의 역할은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개개인의 역량을 최대로 이끌어 내고 잘 조율하여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간혹 우리는 자수성가 한 사람들이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보게 된다. 어려운 상황에서 성공하느라고 고생하고, 성공한 후에는 인격적 수양이 부족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 회사나 사회에 필요한 훌륭한 Leader는 본인이 갖고 있는 역량을 뽐내고 자랑하기 보다는 오히려 넓은 아량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장점을 칭찬할 줄 아는 사람이며 어떤 일의 결과에 있어서도 공은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잘못은 본인이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부하직원이 일을 잘못 처리한 경우에도, 윗사람은 나를 믿고 일을 시킨 것이므로 밑에 있는 사람이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라고 변명한다 하여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런 경우, 동일한 잘못이 또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오히려 상사가 모든 책임을 떠맡게 되면 부하직원은 보다 열심히 일하게 되는 것이다. 호랑이에게 싸움 잘한다 잘한다 고 하면 그 호랑이는 자신보다 더 싸움을 잘하는 호랑이도 이길 수 있지만, 위에서 계속 누르면 제 역할을 해낼 수 없는 종이 호랑이가 되고 만다. 내가 생각하는 Leader로서의 책임과 역할은 부하 직원들을 모두 훌륭한 호랑이로 만드는 것이며 빠른 시간 내에 자신보다 유능한 부하를 복수로 양성해 내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Leader일 것이다.


21세기 최고의 화두가 변화 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정보통신 업계의 최근 5년간의 변화는 과거 50년 동안의 변화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빠르고 놀라운 발전을 가져오고 있다.

이렇듯 급속한 변화는 우리 모두에게 위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도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어 남의 지배를 받으며 고생스럽게 살게되고, 변화에 적절히 적응하면 보통의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 중간은 갈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앞서가는 선각자는 변화를 예측하고 주도해가는 사람으로 변화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도약의 기회로 삼는 패기있는 사람이다.


인간은 저 하늘에 머리를 두고 살기 때문에 하늘에 뜻이 있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고난과 역경은 있게 마련이지만,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모든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꿈이 없으면 목적지 없는 배처럼 표류하게 되기 쉽다. 또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 많은 장애 요인이 있게 마련이며 아무런 어려움도 없다면 그것은 너무 쉽고 작은 꿈을 갖은 것이다.

이는 개인이나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공동의 꿈을 설정하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해 힘을 모으고, 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게 된다. 회사의 경우에도 구성원들이 회사를 통해 개인의 꿈을 이루겠다는 합의를 하게 되면 그 회사는 동일한 기업관을 갖은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정말 힘센 조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은 그 안에 몸 담고 있는 구성원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그런데 회사의 규모가 커지다 보면 회사는 구성원들이 원하는 바를 모르고 지나치기 쉬우며 구성원들은 회사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공감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직이 유기체와 같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최고 경영자와 중간 관리자, 일반 구성원 사이에 수평적이고 다양한 Communication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활한 의사소통은 유기체의 순환계와 같은 역할을 하여 조직의 유연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 일환으로 경영층의 현장 방문 기회와 구성원과의 대화 시간을 늘리고 사내 인트라넷의 최고 경영자에게 란을 통한 의견수렴과 온라인 채팅도 시도하고 있다. 늘 부족하게 느껴질 지라도 다양한 기회를 통해 원활한 의견 교류가 이루어져야만 易之思之의 자세로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협력해 나갈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기업과 그 구성원이 하나의 공동 운명체임을 자각하고 동일한 기업관을 갖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물리적으로 환갑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른바 구세대 중에서도 한참 구세대이다. 최신가요에도 익숙치 않고 DDR도 할 줄 모른다.

그러나 한국 정보통신 대표기업의 최고 경영자로서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n세대 의 가치관을 공유하여 신세대 구성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n세대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솔직한 자유로움이다. 그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회사 발전에 대한 신뢰와 동일한 기업관을 공유하는 것만이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변화 속을 헤쳐가야 하는 우리 기업이 나날이 새로운 생명력을 지탱해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구세대든 신세대든 진심(盡心)은 진심(眞心)으로 통한다.


1941년   11월 20일 전주생 / 전주고졸, 서울대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졸

1966년   SK㈜(舊 유공) 입사

1978년   SK㈜ 기술부장

1987년   SK㈜ 이사(엔지니어링 담당)

1992년   SK㈜ 상무이사(기술담당) 

1995년   SK텔레콤 전무이사(서비스 생산부문)

1998년   SK텔레콤 부사장

1998년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

2000년   [現]SK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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