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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대 이야기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

2005.11.24 02:14

조회 수:6206


 

65억원 낸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

  내 얘기보다 학교기부 많이들 하라고 써줘

젊은 교수 지원 이 원칙…

식사는 2500원짜리만

 

▲ 서울대 최고액 기부자인 정석규(76) 신양문화재단 이사장. 그는 손을 목에 대고서야 겨우 말을 할 수 있는 후두암 환자다.


“많은 재산을 후손에게 상속하는 것은 잘못하면 독약을 안겨주는 것과 똑같아요.”

목에 붙인 노란 고무에 손가락을 대고 입을 열자 쇳소리에 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울대 신양학술정보원에서 만난 정석규(鄭晳圭·76) 신양문화재단 이사장은 투병 중인 암환자였다.

“말할 때가 가장 힘들다”는 그에게 언제 이렇게 됐느냐고 묻자 A4 용지를 꺼내 펜으로 써 내려갔다. ‘후두암. 1998년. 처음 4기. 6년. 2004년 재발 수술.’ 그리곤 다시 목에 손가락을 대고 “그땐 죽는 줄 알았어”라고 했다. 정 이사장은 인터뷰 중간 중간에 말이 힘겨울 때마다 필답(筆答)으로 응했다. 후두암으로 성대를 잘라내 그 자리에 호스를 끼우고 이곳을 통해 숨을 쉰다. 올해엔 위암 수술까지 받아 두 가지 암과 투병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지난달 이종욱(李鐘郁)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과 함께 ‘올해의 자랑스러운 서울대인 상’을 받았다. 그가 이 상을 받게 된 것은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의 상당액을 서울대에 기부해 선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이 지금까지 서울대에 낸 돈은 65억원에 이른다. 공대연구재단과 서울대총동창회에 모두 9억원을 냈고 나머지 56억원은 서울대 발전기금에 27차례에 걸쳐 나눠냈다. 자신이 세운 54억원짜리 ‘신양문화재단’도 사후(死後)에 서울대로 넘기기로 해 서울대 동문으로서 개인이 희사한 돈은 최고액이다.

정 이사장은 서울대 화공과(1948년 입학) 출신으로, 졸업과 동시에 고무산업에 뛰어든 엔지니어 사업가였다. 그는 1967년에 자신이 세운 태성고무화학㈜을 2001년 매각할 때까지 34년간 고무제품 전문경영인으로 일했다. 태성고무화학은 오늘날 유명 타이어업체, 자동차용 고무제품기업의 전신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국내 고무산업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10년 전 자식들을 불러모아 ‘기본적인 돈만 물려주고 나머지 재산은 상속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고희(古稀)를 맞은 1998년 장학사업을 하기 위해 ‘신양문화재단’을 세웠다. “내가 죽으면 재단은 서울대 것이 돼. 돈이 있으면 집안에 불화가 생기게 마련이거든. 자식들도 나에게 바라지 않아.”

정 이사장은 31억원을 들여 서울대 공대 인근에 세운 신양학술정보원에 지난달 사무실을 냈다. 그리고 매일 이곳에 출근하며 후배들을 보는 것을 가장 큰 낙(樂)으로 삼는다. 아마 여생(餘生)을 이곳에서 보낼 것 같았다.

그는 학술지원비를 지원할 때 원칙이 있다. 김도연(金道然) 공대학장은 “정 이사장은 젊은 교수 중심으로 그리고 가급적 학생들도 함께 장학금을 주라고 주문한다”며 “젊은이들이 잘돼야 나라가 잘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이사장은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먹는 밥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기숙사 밥값은 한 끼에 2500원이다. 밥을 먹으려면 식판을 들고 줄을 서야 한다. 대학에 값 비싼 중식당이나 일식당이 있지만 웬만해서는 찾지 않는다.

공대학장을 지낸 한민구(韓民九) 교수는 “한 번은 정 이사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학장들 차보다 훨씬 못한 차를 타고 나와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자랑스런 서울대인상을 받을 때에도 정 이사장은 소매가 닳은 오래된 옷을 입고 있었다. 서울대 교수들은 “절약이 몸에 배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선배”라고 입을 모은다.

정 이사장은 얼마 전 사회대인 언론정보학과에 10억원을 내 기금교수를 채용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공대 출신이라고 공대 후배들만 아낄 수는 없는 일”이라며 “골고루 발전해야 서울대도 좋아진다”고 했다. 그는 갖고 있는 부동산 등을 처분해 인문대나 사회대에도 신양학술정보원을 세우고 싶어한다.

그는 대뜸 “그런데 인터뷰는 왜 하는 거야”하고 물었다. 그리고는 “날 선전할 필요 없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인데 뭘. ‘학교에 기부 좀 많이 하자’고 좀 써 줘”라고 했다.

그는 가난으로 학비조차 대기 힘들었던 학창시절을 얘기하며 “돈 없어 공부하기 힘든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기여입학은 필요하다”고 했다. “기부금을 많이 냈다고 곧바로 그 자녀를 입학시키는 건 기여입학제가 아니야. 몇 대에 걸쳐 기여도를 평가하고 그 후손을 입학시키는 게 바로 기여입학이지. 외국에선 다 그렇게 해.”

 

조선일보 200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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