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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공대 이야기

특별한 과학자는 없다

2006.02.23 11:57

kmw46 조회 수:4556

 

‘특별한’ 과학자는 없다

                               강양구의 과학기술 뒤집어보기 

  

참담합니다. 또 답답합니다.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비교적 내용을 소상히 알고 있는 나도 이러니 기사로만 상황을 접하는 여러분들은 얼마나 답답할까요? 확실한 것은 황우석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발표 논문에 상당 부분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강도 높은 조사를 하고 있으니 ‘진실’은 조만간 밝혀질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른 나라의 사례를 좀 살펴보겠습니다. 혼란스러워 길을 찾지 못할 때 이것과 유사한 앞 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바른 길을 가는데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계의 부정행위는 셀 수 없이 많지만 2000년대 들어서 확인된 두 가지 건만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서른한 살의 ‘천재 물리학자’의 사기극


과학계에서 최근에 발생한 가장 극적인 부정행위는 바로 미국 벨 연구소의 물리학자 얀 헨드릭 쇤의 논문 데이터 조작 사건입니다. 2001년 당시 31살이었던 쇤은 자신의 이름이 올라간 논문을 8일에 하나 꼴로 발표해 전 세계 과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그는 <네이처>에 분자 규모의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는 발표를 해 단숨에 노벨상의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습니다. 이것은 실리콘으로 만들 수 있는 반도체 크기를 훨씬 더 작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함축하는 것이니 과학계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런 쇤의 획기적인 논문들은 곧 의심의 대상이 됩니다. 전 세계 수많은 실험실에서 쇤의 논문에 실린 실험을 재연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렇게 재연에 계속 실패한 몇몇 물리학자들은 쇤이 발표한 논문에서 데이터 조작의 흔적을 찾아내게 됩니다. 버클리 대학의 리디아 손은 그가 실시한 두 가지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가 정확히 같은 노이즈(그래프의 미세한 떨림)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물론 이런 사실이 <네이처>에 알려지자 쇤은 ‘실수로 같은 그래프를 보냈다’고 발뺌을 했고요. (마치 황 교수가 ‘논문 사진에 문제가 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 ‘실수였다’라고 해명한 것과 비슷하지요.)


하지만 사태는 더욱더 커집니다. 또 다른 실험에 대한 논문에서도 이 그래프가 다시 발견된 것입니다. 쇤의 논문을 둘러싼 의혹이 계속 커지자 2002년 5월 벨 연구소는 스탠포드 대학의 말콤 비즐리를 책임자로 하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쇤의 논문을 조사하게 합니다. 4개월 후 조사위원회는 ‘최소한 16개의 부정이 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한 가지 데이터가 여러 실험의 결과로 재사용됐고, 그래프 중 몇몇은 실제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고 임의로 그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결국 2002년 10월 31일 <사이언스>는 쇤이 쓴 8개의 논문을 취소했으며 2003년 3월 5일에는 <네이처>도 7개를 취소했습니다. 27살의 쇤에게 박사 학위를 줬던 콘스탄츠 대학은 2004년 6월 그의 박사 학위까지 박탈했습니다. 하지만 쇤은 다수의 논문에서 데이터를 변조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자신의 실험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실험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디서도 재연되지 않고 있습니다.


독일 최고 과학자의 ‘배신’ 행위


과학계의 부정행위는 독일에서도 있었습니다. 1997년 독일 과학계는 지금 우리나라처럼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시 47세였던 프리드헬름 헤르만과 37세였던 마리온 브라흐라는 생물학자가 1990년대 초·중반에 공동으로 발표한 수십 편의 논문들에 실린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후속 조사를 통해 2000년에는 조작된 논문의 수가 애초 조사 결과보다 훨씬 많다는 검토 결과도 나왔습니다.


헤르만과 브라흐는 이미 1990년대 초 독일을 대표하는 과학자로서 명성을 확고히 했기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의 의혹에도 불구하고 그들 논문의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주장은 공개적으로 제기되지 못했습니다.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다가는 이 두 사람이 자신의 앞날을 가로막을까 우려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1997년 연구원 중 한 사람이 멀리 뮌헨에 있는 자신의 박사 논문 지도 교수에게 데이터 조작 사실을 털어놓았고 그 지도 교수는 이 사실을 헤르만과 브라흐의 대학에 통보하게 됩니다.


조사위원회가 꾸려지고 이 두 사람의 연구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시작되면서 결국 브라흐는 1994년에서 1996년 사이에 발표된 4편의 논문에서 데이터를 변조한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서로 무관한 실험들에서 나온 이미지 파일들을 ‘뒤섞고 잘라 붙여’ 새로운 실험 데이터를 만들었고 헤르만 역시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결국 이런 사실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됐고 두 사람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조사위원회는 최종적으로 37편의 논문에서 데이터가 변조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대학에서 파면 당하거나 스스로 교수직을 사임하게 됩니다. 또 그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한 기구는 연구비를 회수하기 위해서 이들에 대한 법적 소송 절차를 밟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헤르만은 끝까지 자신의 부정행위 사실을 부인합니다. 그는 이미 정상급 과학자의 지위에 오른 자신이 부정행위를 저지를 만한 아무런 동기가 없다는 핑계를 댔습니다. 심지어 모든 책임을 브라흐에게 돌리기까지 했지요.


과학은 특별하지 않다


쇤과 헤르만-브라흐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할 게 있습니다. 저명한 과학자가 논문에 실린 데이터를 조작하는 일은 분명히 부끄러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우리나라가 특별히 ‘후진적’이어서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 앞의 일도 과학 선진국 독일과 미국에서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일입니다. 오히려 이번 일은 과학계 역시 사회의 다른 영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의 여러 영역과는 달리 과학자들은 사리사욕과는 담을 쌓은 채 ‘과학적 진리’와 ‘공공의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과학자들도 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또 과학 영역이 사회의 여러 영역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과학자와 그들의 과학 활동도 마냥 ‘깨끗할 수’만은 없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정행위라는 유혹에 빠져들 수도 있는 것이 과학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여러 가지 영역에서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마련해놓고 또 그것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다. 과학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동료들의 상호 감시와 상호 견제, 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검증 시스템, 더 나아가서는 과학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그것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시민사회의 감시와 참여 등이 필요합니다.


자칫 ‘진실’이 묻힐 뻔한 시점에 용기 있게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젊은 생명과학자들이었습니다(동료들의 상호 감시와 견제). 이번 일은 ‘절망’뿐만 아니라 ‘희망’도 우리에게 던져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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