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ge Of Engineering
서울공대 이야기

                                                                                                  김현진 서울대기계항공공학부교수

                                                            

                                                          여교수의 엄밀한 매력 

                                         

                                            | 글 | 김호성 서울공대 화학생물공학부 05학번ㆍurusa202@snu.ac.kr |

 

 

최근 사회 각 분야에서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기계항공 분야에서 29세 여교수의 등장은 우리 사회에 남아있던 편견을 단번에 깨뜨렸다. 화제의 주인공인 김현진 교수를 만나봤다.

소설책 읽는 것을 좋아하며 학교 백일장에서 항상 일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글 솜씨가 좋던 소녀가 있었다.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은 모두 그가 문학가나 기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그에 못지않은 과학적 재능과 열정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과학고 진학과 동시에 숨가쁘게 달려온 그는 어느새 29세에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가 되어 있었다. 서울대 최연소 교수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함께.




        기계에 사랑을 싣고 


“어렸을 적엔 기계공학 하면 커다란 공장에서 용접하는 모습만 떠올리곤 했었어요. 그런데 대학교 1학년때 여러 수업을 들으면서 다양한 분야와 연관된 매우 폭넓고 섬세한 학과라는 확신이 들어 주저없이 선택하게 됐죠.”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질문에 대해 김현진 교수는 기계공학의 매력을 설명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곧이어 “솔직히 여학생에게 기계공학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을 깨뜨려보고도 싶었어요”라며 숨어있는 당찬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암기 지식보다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좋아했어요. 자동제어 분야는 수학 원리를 파헤치며 로봇, 자동차 산업과 접목시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게 됐죠.”


이런 연유로 자동제어 연구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대학을 골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미국 유학 직후 신문을 통해 헬기사고와 그 인명피해에 관한 기사를 자주 접했다. ‘헬리콥터를 무인 자동화해 사고를 줄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은 그의 연구분야를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이후 그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헬리콥터에 응용해 무인 조종기능을 향상시키는 공동 연구를 했다. 연구와 관련된 헬기 실험은 사고위험이 커서 헬기상태에서 기상상태에 이르기까지 확인할 사항들이 수십 가지에 이르렀다. 한번은 두 헬기가 정면으로 마주보며 날아오다가 센서로 상대를 인식하고 피하는 아찔한 실험을 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산업환경으로는 미국처럼 대형 항공기 산업은 무리이기에 적은 비용으로도 가능한 소형 무인 항공기 분야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올해 ‘무인비행연구실’이 문을 열면서 그의 힘찬 날갯짓이 드디어 시작됐다.




“이제는 천천히 가렵니다”


김현진 교수는 지금까지 누구보다 빠른 길을 걸어왔다. 초등학교부터 남보다 1년 먼저 입학해 광주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입학했다. 대학 과정도 남들보다 1년 일찍 마쳤다. 같은 나이 친구들이 대학교에 막 입학할 무렵에 김 교수는 이미 대학 졸업자가 되었고, 이후 UC 버클리대에서 기계공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과학고와 KAIST 진학을 결정할 때, 그리고 과를 선택할 때 부모와 홍역을 치렀다. “전혀 예상치 않은 분야로 진출하고자 하는 딸의 선택에 선뜻 찬성을 할 수 없으셨던 거죠.”


하지만 돌이켜 보면 지금의 자신을 모습을 만드는 데에는 부모의 반대도 일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단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스스로 선택한 만큼 중간에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학고 입학 전 예비 평가에서 전체 60명 중 40등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해요. 실망과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좌절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그녀는 부모의 얼굴을 떠올리며 공부에 매진했다. 덕분에 성적이 꾸준히 향상되는 것은 물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감’을 선물로 받았다.


그는 남들보다 빠른 길을 걸어온 것이 자랑스럽게 여겨진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공부 외에 또래 친구들과 그 나이에 나누는 고민을 함께 하지 못한 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단다. 세상에서 공부가 가장 쉽다는 말처럼 삶에서 풀어가야 할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차츰 경험하기 때문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김 교수는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되다보니 마음의 부담감도 컸다고 털어놨다. 수백명이 참석하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곧바로 눈에 띄고, 학생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행동 하나 하나 신경 써야 하는 상황들이 버겁기도 했다. 1년 반의 시행착오를 통해 이제는 부담을 장점으로 풀어가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무인비행연구실 연구원들의 꿈은 매일매일 자라고 있다.

김 교수는 매일 아침 눈 뜰 때 그날 하루가 기대되는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고 싶단다. 그러려면 남들과 비교하면서 살기보다는 언제 무엇을 할 때 자신이 가장 행복한 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요즘 그의 최대행복은 학생들이 ‘아하 그렇구나’ 하는 반응을 보일 때라고.


또한 김 교수는 공학도라면 글쓰기와 발표능력을 기르는데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연구를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의 연구성과를 과연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까요?”라고 되묻는 김 교수는 특히 우리말 글쓰기를 못하는 사람이 결코 영어 논문을 잘 쓸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100년 전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과학자로 우뚝 선 퀴리부인을 존경한다. 자신 또한 더 이상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어리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관심을 받거나 특별한 대접을 받기 보다는 실력으로 입증받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는 느림의 미학으로 자신의 진정한 꿈을 향해 가고 있는 김현진 교수가 한국의 퀴리부인으로 탄생할 그날을 꿈꾸어 본다.


Profile


1992년 광주과학고를 2년 만에 수료하고 1995년 3년 만에 KAIST를 졸업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기계공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2년간 같은 대학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2004년 9월부터 서울공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취·재·후·기


많은 관심과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광주과학고 동문 선배이자 같은 대학의 존경하는 교수를 만나는 일은 짜릿함 그 자체였다. 마냥 즐겁기만 하던 새내기 시절을 마치고 2학년 봄을 보내는 내게 이번 인터뷰는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장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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